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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은간다 Oct 18. 2019

7. 시골 터미널에서 환불하지 못한 버스 티켓

룰 같은 거 없는 게, 이런 건가? 

얼마 전 일때문에 아주 먼 시골로 출장을 갔다. 서울에서 소도시까지 기차를 타고, 소도시에서 일행을 만나 차를 타고 한참을 간 시골. 가는 데만 5시간 넘게 걸린 곳이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 걱정도 했지만 한적하고 공기도 좋아 이래서 시골에 사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다. 가을 하늘이 너무나 푸르고 근처 바다도 있어서 일을 하러 간 모두가 감탄을 했다. 그러나 일은 몇 시간 뒤에 생겼다. 


올 때 차를 태워줬던 일행과 행선지가 달라 시골 터미널까지만 함께 할 수 있었다. 버스 표를 구입하고 나서 보니 버스가 올 때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아 한참 기다려야 했던 상황. 잠시 산책을 하다가 택시로 기차를 타기 위한 소도시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니 6만원 정도를 주면 소도시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택시는 몇 곳을 경유해서 가는 버스보다 빠를 것이고, 기차 시간도 당길 수 있을 것 같아 버스 표를 환불하고 택시를 타기로 결정! 


그런데 터미널에 다시 들어가보니 나에게 버스 티켓을 팔았던 부스는 이미 문을 닫고 직원도 아무도 없었다. 아직 모든 버스가 출발한 것도 아닌, 저녁 6시 반쯤이었는데 그냥 퇴근해버리고 티켓 부스도 닫힌 것이다. 구입은 했지만 환불은 할 수 없는 상황.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서나 겪을 법한 일을 내가 우리나라 어느 작은 시골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버스 기사 분께 여쭈어 보니 그 시간 버스를 타는 다른 사람한테 그 표를 팔라는 것이었다. 황당함의 연속. 아무도 사지 않는 이 표를 누구에게 팔며, 아직 승객들이 남아있는 버스 터미널에 무책임하게 모두가 퇴근해버리며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은 내가 살던 세상에서의 상식과는 많이 달라있었다. 


예전에 귀농 귀촌 교육 같은 것을 받으러 가면 시골에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해야 하며,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분쟁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냥 그들은 원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외지에서 온 사람 역시 억울해도 그 룰에 따라야 한다는 것. 설령 그것이 법에 반한데도 말이다. 많이 황당하고 많이 억울했지만 나 역시 어찌 할 수 없이 그냥 그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와야 했다. 버스비를 버린 셈 치고 택시를 타기에 아깝기도 했고 뭔가 억울하기도 했고 맥이 풀리는 느낌? 갑자기 시골로의 이사가 거부감이 생겨버렸다. 


한참 후 버스에 오르니 버스에 타는 건 나와 내 일행 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타지 않았다. 이런데 무슨 남한테 표를 팔라는 말인가? 느긋하기 그지 없는 버스는 경유지를 몇 곳을 거쳐 소도시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도 이루지 못했다. 씁쓸하고 불편했다. 요즘 국내 여행을 많이 유치하려고 하고 귀농이나 귀촌에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 당연한 상황이 당연하지 않은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걸 개선하는 게 먼저 아닐까?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씁쓸함이 가득했던 출장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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