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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은간다 Aug 07. 2019

5.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던 한 시골 식당

닭백숙 6만 원을 이해하긴 힘들어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밥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 그 지역의 특색을 담은 음식,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은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우리는 여행을 할 때 어떤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음식을 기대한다. 아무리 멋지고 좋은 여행지라도 밥이 맛이 없다면 그 여행 자체에 실망하게 된다. 오죽하면 결혼식장을 선택할 때도 밥이 맛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따지고, 남의 결혼식에 대한 평가를 'OO 결혼식 밥이 맛있었지'라고 이야기할까. 남의 결혼식도 그러한데 여행이라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남편과 여느 때처럼 시골에 집을 보러 갔다. 강원도에 위치한 그곳은 산 경치가 뛰어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꽤 애정 하는 곳이다. 지난겨울에 여행으로 갔다가 멋진 풍경에 반해 집을 보러 한 번 더 갔던 것. 우리가 주거지 조건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기나 자연환경 같은 것이 만족스러워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 모두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지런을 떨며 그곳에 도착했다.

실제 장소와는 무관한 사진임

집을 둘러본 뒤 점심시간이 되어 동네에 있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큰 동네는 아니지만 인근에 관광지가 있기도 해서 나름 식당이 두 곳이나 운영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우리보다 먼저 안에 있던, 한눈에 봐도 외지인 가족이 눈에 띄었다. 약간 오래된 식당은 위생과 정리와는 무관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내 기대까지의 위생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 닭백숙 6만 원, 닭볶음탕 6만 원... 그것도 5만 원이었던 걸 매직으로 고쳐서 써놓은 가격. 제육볶음은 2만 원. 직접 닭을 키워서 파는 곳도 아니고 토종닭도 아니고 그냥 일반 닭인데? 그 외에 식사 메뉴도 있긴 했지만 서울과 비교해도 비싼 축에 속한 가격대라서 좀 당황스러웠다. 엄청나게 맛이 있는 그런 숨겨진 맛집 같은 것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싸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일단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 되어 식사 메뉴를 주문했다. 뭔가 찜찜한 기분...


주문을 한 뒤에도 한참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자신의 일만 하고 계시던 아저씨는 아주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우리 식사 주문을 주방으로 전달하였고, 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맛이 훌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이 맛도 저 맛도 내 맛도 니 맛도 없는 밥상. 익지 않은 감자를 비롯해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반찬들과 음식. 우리 부부의 입맛이 엄청나게 까다로운 것이 아님에도 입맛이 뚝 떨어지는 맛.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시큼 텁텁한 맛의 찌개와 내 기대와는 너무 달랐던 막국수. 외지인 가족도 도망치듯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집에 와서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고작 한 끼 식사하면서 투정 부리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없이 쩨쩨한 나는 이 음식을 이 가격에 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백종원 아저씨가 나타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은 가게였다.


물론 지방에 있는 가게가 무조건 싸야 한다를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이 돈을 내고 먹을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면 돈을 더 내고도 충분히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돈을 쓰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벗겨먹겠다고 달려드는 건 아닐까? 계곡에서 불법으로 운영하는 닭백숙 집들은 20만 원이라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내 여행을 망설이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 아닐까.


음식 값만 그러는 게 아니다. 숙박비도 생각해 볼 문제 아닐까? 조금 유명하다거나 사람이 몰리는 곳의 숙박비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아 있다. 어차피 한 철 장사이니 바짝 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한 철 장사를 하겠다고 아예 사람들의 발길을 끊게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문제 아닐까? 시골집을 리모델링한 펜션에서 1박 17만 원, 20만 원을 주어야 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내가 귀촌을 생각하며 이 지역을 둘러보는 입장이 아니라 여행을 하러 왔더라면 아마 다시는 이 곳에 안 가야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그 지역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요즘, 국내 여행지에 살며 그곳의 가치를 파는 사람들이 국내 여행객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많이 남는 주말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 덧.

아마 그 식당은 백숙이나 닭볶음탕이 엄청난 맛집이었을 것이다. 하수인 내가 식사류를 시켜 그런 것일거다. 그래서 6만원을 받지만 엄청난 만족을 주는 곳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닭이... 칠면조처럼 큰 곳일 수도 있지. 암암...


+ 개인적으로 종종 생각나는 엄청난 시골 맛집으로는 전남 고흥 동방기사식당에서 먹었던 삼겹살 백반!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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