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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Mar 24. 2024

박사과정, 유학 갈 결심

미국, 상담심리학(APA) 및 상담사교육(ACA) 전공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상당한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미국 박사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그간 숱하게 만났다. ‘큰 뜻’이 있냐며 에둘러, ‘교수’가 될 생각이냐며 단도직입적으로, 공부가 ‘그렇게’ 재밌냐며 따지듯, 물어오는 모양새 또한 제각각이었다.


부모님부터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까지, 나의 결정을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거친 요약과 쓸데없는 부연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채 두서없이 떠들 수밖에 없었던 몇 번의 실망스러운 경험 끝에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톺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 불가능한 경제적 이득. 미국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에게 등록금 면제 혜택과 함께 최저 생계비에 해당하는 돈을 다달이 지원해준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공계가 아닌 이상) 생활비는커녕 등록금 면제 혜택조차 받기 어렵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려면 또 다시 월급 없는 연수휴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 생활비를 해결하더라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학자금대출로 메꿔야 하는 불상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면, 유학휴직을 통해 월급의 절반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한국 박사과정: 생활비 최대 3천만 원 - 등록금 680만 원 = 약 2,320만 원

미국 박사과정: 생활비 2만 2천 달러 - 등록금 0원(면제) + 유학휴직 봉급 약 900만 원 = 약 3,700만 원


관심사에 부합하는 커리큘럼과 연구. 미국의 상담 교육과정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사회정의 옹호(social justice advocacy)를 커리큘럼의 핵심 바탕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극소수의 학교를 제외하고 이를 커리큘럼 안에서 다루는 곳이 거의 없다. 더불어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상당수의 상담 연구는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조명하고,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을 구안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구가 갓 시작되어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상황이다. 미국과 한국 간 환경의 차이와 내 관심사를 고려할 때, 미국으로 가는 것이 더 많은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수련 환경. 한국에서는 공신력 있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적어도 천만 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박사과정 커리큘럼 안에서 상담 수련이 제공되어 이에 따르는 추가 비용이 전혀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수련생이 수련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이 책임지고 수련생을 교육하는 체제가 잘 갖춰져 있다. APA 상담심리학(counseling psychology) 과정에서는 졸업 전 1년간 미국 전역의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유급 인턴십 과정을 통해 집중적인 수련 기회를 제공한다. 더 따져봐야 손가락만 아플 정도로, 수련 환경만큼은 미국의 압승이다.


더 넓은 커리어.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으로 진출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한국으로 진출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또한 미국에는 심리학자 내지 상담사가 갖는 지위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는 상담 서비스를 규정하는 기본법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상담 서비스가 보험의 보장 대상으로 취급되어 한국에 비해 상담에 대한 수요와 접근성이 높은 편이기에, 개업에 따르는 부담도 적다. 민간 연구소나 테크 기업 등에 취업할 기회 또한 미국이 더 많으므로, 상담사나 교수가 되는 것 말고 전공을 살릴 일이 마땅치 않은 한국에 비해 커리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새로운 경험과 국제적 네트워크.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한국의 상담계를 벗어나 넓은 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 그와 동시에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협력적 관계를 꾸릴 수 있다는 점은 유학에 따르는 기회비용과 위험을 넘어서는 대체 불가능한 메리트로 느껴졌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 미국으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이주민이자 소수자로서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어쩌면 그 시기에만 가능한 삶의 중요한 요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 불안을 매 순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꽃길은 어디에도 없으니, 어디에 있든 간에 마음을 다잡고 정진하면 될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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