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보면, 스무 살 이후인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여겨질 만큼, 집-학교-학원의 반복된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가,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개인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단체 생활이 시작되었다.
공대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조별과제가 많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신입생들끼리 어찌어찌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갔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도, 학년도 다양한 선, 후배들과 조별모임을 하게 되면서부터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연히 잘 모르는 선배와 조별모임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들 또래지만, 당시에는 ‘선배’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고, 잘 아는 누군가가 리드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대는 웬걸? 선배는 바쁘다는 이유로 조별모임에 잘 참석하지 못했고, 나와 동기들이 고군분투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소위말하는 ‘프리라이더’의 선배모습에 질렸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매우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당시에는 그랬다. ‘그래 어차피 이번 한 번만 보고 더 안 볼 거니까, 좀만 참자’. 그렇게 넘겼던 것 같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을 했다. 회사는 학교와는 또 다른 진정한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규모가 큰 기업이라,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여러 유관부서가 모여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마음이 잘 맞는 동료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같이 일하는 동료와 뭔가 안 맞는 듯한 기분이 들떄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순간에, 내가 내린 결론은 ‘피하자’다. 그런데, 학교를 다닐 때야 내 마음대로 피하면 그만이지만, 회사는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꽤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던 중에 결국은 터져버리고 말았고,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피하는 편‘이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회사에 와서, 더 큰 사회를 마주하고 나서야 ’내면의 비판자‘를 제대로 경험해 본 것 같다.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는 맞춰야겠는데, 여전히 불편한 존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