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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Jul 16. 2019

10. 사장님, 이러시면 곤란하죠

두 개의 회사

L대리와 나의 신경전이 한참 극에 달할 때쯤, 회사는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업종을 추가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사무실과 직원은 모두 그대로인데 회사는 또 한 개의 회사를 사업자 등록해 일을 늘렸다.

당시 L대리가 상사들에게 내가 일이 없어 보인다고 이야기해댔기 때문에 나를 놀고 있다고 생각한 상사들이 새로운 회사의 업무를 전부 나에게 맡겼다.

사실은 자기들도 귀찮은데 사장님이 추진해서 하는 일 같았다.

사장님이야 뭐, 업종을 추가해서 소득이 많아지면 자기의 이윤이 늘어나니깐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겠지.


새로운 회사의 사업자 등록부터 업무규정과 문서 서식 작성까지 모조리 나의 일이 되었다.

기존 회사의 업무에서 새로운 회사의 업무가 추가되면서 나는 L대리가 그토록 원하는 '야근 멤버'가 되었다.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코 일이 적지 않았다.

하루에 10분도 안 쉬고 일을 해야지 겨우겨우 퇴근 시간 전까지 일이 끝났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자기가 제일 바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특수했다.

하루에 2개의 회사 일을 했고, 업무와 관련된 통화를 할 때면 각 각 다른 회사 이름으로 나를 소개했다.

혹시라도 실수하면 큰 일 난다는 사수의 당부를 받으면서.


일은 두 배가 되었는데 나의 월급은 그대로였다.

새로운 업종을 추가해서 사장님의 가족은 한 달에 적어도 몇 백만 원의 이윤을 챙기는데 정작 나는 수당 없는 야근만 늘어갔다.


저 무능력한 L대리는 상사들의 눈을 피해서 저렇게 놀면서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데, 나는 이게 뭔가 싶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앓는 소리'를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일을 받으면 어떻게든지 업무 시간 안에 소화했고 앓는 소리 한 번 안 했기 때문에 '일이 없는 애'로 낙인찍혀렸다.


당시 나는 일을 이렇게 키운 사수에 대한 불만도 늘어만 갔다.

그는 'exam'을 '엑삼'이라고 발음하지만 영어권 국가 유학파라며 자기 스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늘 나에게 업무를 미루지만 공은 가로채는 전형적인 '상사'의 모습이었다.

후배인 나를 곤란에 빠트리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부서인 L대리에게 찰싹 붙어서 이제 그 못된 짓을 배우고 있었다. 청소시간이면 당연하게 카페에 내려갔고 '아줌마'의 입을 통해 청소를 하지 않은 나와 P양을 질책했다.

이제 그도 상사들이 출장을 가는 날이면 나에게 일을 미루고 자기 자리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타자기 소리가 멈추면, 그는 어느새 내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와

"강개군날돌들막씨, 지금 뭐해요?" 하면서 불시에 내 컴퓨터 화면을 점검하기도 했고, 내가 개인적으로 사다 놓은 내 자리의 간식들을 "그거 하나 줘봐요"라며 마치 자기가 산 간식인 것처럼 무례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일 년 중 유일한 휴가인 3일의 여름휴가 마지막 날 그는 나에게 내일 출근하는 것 잊지 말라는 연락을 해서 내 휴가의 마지막을 망쳤고, 아무것도 설정하지 않아서 기본 프로필이던 내 카카오톡을 보고 얼굴이 나오는 사진으로 교체하라는 말도 안 되는 강요도 했다. 부당한 야근 강요도 부족했는지 이제는 토요일마다 나와서 회의를 하자고 했다. L대리처럼 그도 점점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날 길들이려고 했다. 당연히 나는 불필요한 주말출근에 응하지 않았고, 그는 나를 압박하려고 자기가 퇴근할 때면 '저 이제 퇴근하네요. 푹 쉬세요'라는 카톡을 보냈다. 토요일마다 L대리와 자기만의 형식적인 회의시간을 갖고 나에게 회의록을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사회생활이 다 힘든 거라지만 왜 내가 다녔던 그 회사에서는 이렇게 상식 이하로 무례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래도, 버티려고 해 봤다


힘들었던 취업준비생 기간의 생활과 내가 출근 첫날 메모장에 썼던 메모를 읽으며 버티려고 나는 부단히 노력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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