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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Jul 18. 2019

12. 드디어, 퇴사

탄산음료 까지는 아니더라도 탄산수 정도의 복수랄까?

각 사업장은 매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할 의무가 있다.

그쯤 우리 회사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게 됐다.


예쁘고 친절한 강사님이어서 그런지 L대리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은 즐겁게 교육을 받았다.

L대리가 특히나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상식적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평소에 언행은 왜 그따위냐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물어보고 싶었다.

교육은 어느새 막바지에 들어갔고, 내 예상처럼 강사님은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하셨다.


나는 손을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강사님, 사실 제가 예전부터 성희롱을 많이 당했었거든요. 성희롱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휴대폰 녹음 파일 개수를 보여주며) 녹음을 했던 증거들을 수집했는데, 이게 경찰에 고소를 하려고 하면 시효기간이 있나요? 고소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강사님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고소 절차를 설명해주셨고 나는 굳어가는 L대리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성희롱 예방 교육이 끝나고, L대리가 나에게 말했다.

"강개군날돌들막씨는 성희롱을 자주 당했었나 봐?"

"네~ 제가 좀 물러보이게 생겼는지 그런 일들이 있었어서 사소한 것도 다 녹음해 놓는 편이에요! 사실, 전에 한 명을 고소한 적이 있었는데 합의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거 아세요? 성 관련 범죄는 합의금이 엄청 높대요! 그런데 저는 합의 안 해줬어요! 그런 놈들은 감옥에 가야죠! 안 그래요, 대리님?"

"아... 그렇지... 잘 대처했네..."


그 뒤로 더 이상 L대리의 성희롱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L대리의 성희롱은 멈췄지만, 이미 여러 가지 일로 회사생활에 마음이 떠난 나는 그곳을 더 버틸 힘이 안 났다.

살면서 욕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길을 가다가 부딪히면 욕이 나올 정도로 나는 거칠어졌다.


그때쯤 갑자기 사장님이 전 직원에게 회의 일정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회의 날 나의 사수는 특진을 했다.


사실 내가 들어온 그 날부터 특진을 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그도 들어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윗 선들이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 회사로 들어온 이유는 어차피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서임이 자명하니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사수를 O대리님으로 불러야 했다.

조금은 억울했다.

나는 두 회사의 업무를 한다.

O대리보다 바빴고 휴가도 못 썼다.

OA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O대리에게 OA업무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온갖 귀찮은 업무를 나에게 시켰으며, 어차피 자기는 사장 아들이라서 상사들도 다 좋은 말만 해주는데도 굳이 내 공을 가로챘다.

아마도 무능력한 낙하산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싫었겠지만.


잠시라도 타자 치는 소리가 멈추면 소리 없이 다가와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혹시라도 업무를 안 하는지 감시하는 그 때문에 나는 정말 숨 쉴 틈 조차 없었다.

이제는 그런 그가 진급을 했고 나보다 월급도 훨씬 많이 받는다.

(물론, 이전에도 그는 나와 같은 직급이었지만 월급이 더 많았다.)


이 외에도 회사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가족회사였던 그곳은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거래처로 보내는 몇 개의 문서를 조작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오래 일을 해온 것처럼 보였다.

그곳이 첫 직장이었지만, 나는 그런 업무에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업무 미숙'을 핑계로 어떻게든지 그 업무는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O대리도 혹시나 모를 불이익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자꾸만 나에게 문서를 조작하는 일을 배울 것을 강요했다.

이미 두 회사 업무를 하며 각각 다른 회사 사람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는데... 문서 조작이라니...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매일 울며 하루를 보내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무조건 버티라고 하셨던 부모님도 그쯤 나에게 그만두고 좀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그 정도의 회사라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갈 수 있지 않냐고.

그리고 가족회사는 이제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매일 출근길에서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끝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어느 숨 막히는 날, 나는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하나 둘 퇴사 준비를 하면서 유럽여행을 할 준비를 했다.


내가 퇴사하기로 마음속으로 정한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 나는 O대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O대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 퇴사하려고요."

"네?? 갑자기 왜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기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나의 퇴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히면서 왜 저렇게 놀라는 거지? '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인사팀에 있던 나는 퇴사 절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퇴사 한 달 전에 퇴사 통보를 했던 것이고, O대리를 포함한 상사 모두에게 나의 사직서를 메일로 보내 증거를 남겨놓았다.

추 후 나에게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신경도 안 쓰던 상사들이 계속해서 면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한 결 같았다.

"저는 출국 비행기 표를 이미 끊어놓았고 번복할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퇴사 한 달 전에 퇴사 의향을 말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0월 0일에 퇴사할 예정이니 그렇게 알아주세요."


마치 아무도 나의 퇴사를 예상하지 못한 듯 상사들의 설득이 계속되었지만 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나는 퇴사하면서 L대리와의 일과 그의 근태 문제를 전 사원에게 메일로 보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귀찮은 문제로 엮이기 싫어서 '개인적인 사유'로 조용히 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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