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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Jul 09. 2019

2. 완벽한 존재

나의 첫 임무 - 1초의 마법

내 첫 직장은 그 당시의 나에겐 완벽한 존재였다.


집에서 적당한 거리의 위치, 부족하지 않았던 연봉, 젊은 동료들, 맛있는 점심식사까지.

그곳에 합격 통보를 받았던 순간부터 나는 안정감을 느끼며 이제 평생 공부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출근 첫날, 면접 날에는 볼 수 없었던 L대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나에게 슬리퍼, 칫솔, 텀블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내밀었다.

입사 전에 인턴생활을 했던 나는 출근 첫날 필요한 준비물들을 모두 챙겨갔고, 그의 호의를 웃으며 거절했다.

퇴근 시간 30분 전, L대리는 나에게 첫 출근이라서 힘들었을 텐데 먼저 퇴근해도 좋다고 했다.

넉넉해 보이는 인상의 그는 처음에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 바쁜 업무 때문에 신입사원을 챙겨 줄 사람은 많지 않다.

동료들은 모두 자기 일에 매진했고 나는 일주일 정도 눈치만 보고 앉아있었다.


"강개군날돌들막씨, 지금 뭐해요? 이 것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지금 바쁜데 양이 많네요"

사수가 나에게 첫 업무를 내려주었다.

첫 임무이니만큼 반드시 완벽하게 해내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받은 나의 첫 임무.

'......?, 정말... 이 걸?'



그가 나에게 준 첫 임무는 다름 아닌, 단순 숫자 입력이었다.


'연속 데이터 채우기' 버튼 한 번이면 끝나는 그 작업.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그가 수 백 단위의 숫자들을 하나하나 입력했다면, 저 것 때문에 야근을 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사실이었다.


나는 단 1초 만에 저 업무를 완벽히 해낼 수 있었고 곧 회사에서 '엑셀 천재'라는 별명이 생겼다.


내 사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회생활이 아예 처음이었고, 나보다 한 달 앞서 입사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낙하산'이었고, 나의 자리는 그의 역량 부족으로 생긴 자리였다.


그의 역량 부족으로 내 자리가 만들어져서 입사했으니 다행인 걸까, 아니면 이토록 역량이 부족한 동료를

사수로 모셔야 하는 일이 불행인 걸까.


하지만 그는 친절했고 겸손한 것 같았다.

자신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원이라고 말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뭐든 다 돕겠다고 말만 하라고 했다.


그때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실수를 저질렀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 또한 실수를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그때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나는 직장 우울증을 안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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