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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Mar 29. 2020

 입맛도 나이를 먹는다.


시골에서 자랄 때, 감자와 옥수수,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 반찬은 넉넉했지만 단백질 공급원이라고는 달걀마저 귀했고 고기는 명절이나 잔칫날이라야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니 어른들은 복날에 강가에서 개를 잡거나 겨울철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올 때면 산에 올라 토끼도 잡아오고, 꿩도 잡아오고, 심지어는 개구리와 뱀도 잡아먹으며 영양 보충을 했다. 


 엄마 말씀이 기억에도 없는 내 어린 시절, 고기를 주면 비계만 골라 먹었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비쩍 마른 몸매를 유지했지만 이후 오 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살이 찌고 통통해진 걸 보면 그 시절, 지방을 과하게 섭취한 것이 원인 중 한 가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려서 못 먹은 한을 풀듯, 젊어서는 고기반찬을 유독 좋아했고 아이들에게도 쉽고 간단한 고기반찬을 자주 해줬다.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oo엄마, 고기 좋아하잖아"하고 무조건 고깃집을 갈 정도로 주변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입맛이 변한다. 이제 고깃집보다는 위에 부담이 안 되는 가볍고 산뜻한 음식이 좋다. 때론 음식점보다 베이커리 카페에서 먹는 빵 한쪽과 커피 한 잔이 좋다. 배가 너무 부르면 행복한 게 아니라 짜증이 나게 되니  고기는 어쩌다 여럿이 외식할 때만 먹게 될 뿐 집에서는 안 먹힌다.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면 난쟁이 똥자루만 한 내 키는 순전히 성장기 때 영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공부에도 때가 있듯이 먹는 것도 때가 있는듯하다. 식욕이 왕성하고, 치아가 튼실하고, 먹는 대로 키로 가고,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성장기 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척 소식하는 것 같지만, 예전만큼 안 좋아한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나이에 비해 넘치는 식욕을 보유 중이고 넘치는 살도 끼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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