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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자반 Oct 09. 2023

지도교수님의 짐이 될 것만 같은 날

수학) 수학과 대학원 일기

별스런 일들이 많았다. 

지난 브런치를 올린 5월 31일 이후로 정말 별스런 일들이 많았다.

0.05점 차이로 간신히 펀딩이 끊어질 것을 면한 첫 성적을 받았고, 박사자격시험을 망쳤다.

박사자격시험을 잘 못 본 여파로 원하던 조교 과목을 배정받지 못했다.

입학 후 1년 이내에 박사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현재 재학 중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수 없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사실 별스런 일이 아니라 다소 큰 일이다.


다른 친구들과의 격차를 많이 느꼈다. 

친구,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일들에 무던하다고 느꼈는데,

평생 이 학계에서 남을 비추는 병풍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정말 지난했다. 

누군가 학회에 이름을 올리고, 누군가 학교를 빛내는 별이 될 때,

나는 결국 지도교수님의 미처 버리지 못한 짐짝이 될 것만 같았다.

오래 데리고 있으니 어떻게든 졸업은 시켜야 하는, 그러나 차마 그 조잡해빠진 학위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수 없는, 그래서 졸업시킬 수 없는 그런 제자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계속 생각한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계속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면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잃지 않은 단 하나의 나는 

내 목표와 방향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힘이 든다. 

내가 찾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앎에도, 

자꾸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지도교수님의 시선과, 학우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런 것에 빠져들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을 앎에도 그런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평가에 마주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순간순간 평가받고 살아간다.

평가대상은 자신의 일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이 대상이 된다. 외모부터 취미, 학벌, 부모님의 직업, 심지어 내 어깨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평가의 대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색깔을 잃지 않는 방법은

오직 내 안에만 집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박사자격시험에 떨어졌어도, 다른 학우들보다 모자라도, 뭐 어떤가.

어쨌든 나는 시험 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아가고 있다.

나는 결코 나의 느린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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