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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an 26. 2024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씨네아카이브 33. 영화계의 등용문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

오래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유수의 영화제 사이에서도 확고한 가치관과 방향성으로 꾸준히 한 길을 걷고 있는 영화제가 있다. 바로 영화계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선댄스 영화제’! 국내 개봉이 확정된 작품 중 홍보 포스터에 선댄스 영화제를 언급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국내 관객들에게도 선댄스 영화제가 많이 각인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마침 레터 발행일이 영화제 개막일과 맞물린 관계로 씨네아카이브 33번째는 선댄스 영화제 특집 당첨. 모처럼 예전에 봤던 영화가 아닌 새로운 영화를 봤더니 생각도 많아지고, 좋은 방향으로 자극도 얻고 생산적인 여가를 즐긴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하다. (껄껄)


"씨네아카이브 33. 영화계의 등용문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 특집)" 전문 읽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Fruitvale Station)>
라이언 쿠글러, 2013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 실화 바탕의 작품으로 라이어 쿠글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100만 달러 미만의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는데 북미에서만 1,61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평론가들의 호평과 흥행까지 모두 거머쥐었다.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와 주연을 맡은 마이클 B. 조던은 해당 작품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마이클 B. 조던은 이후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에 출연하며 라이언 쿠글러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블 영화를 즐겨보지 않아서 감독과 배우 모두 해당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나 독립영화에도 꾸준히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적이었다!) 여담으로 마이클 B. 조던은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이름, 성, 인종까지 똑같아서 활동할 때 미들 네임을 넣어 꼭 ‘마이클 B. 조던’이라고 표기한다고. (미들 네임의 존재 이유...?)

(출처: 영화 스틸컷)

2008년 12월 31일. 22살의 오스카는 새해를 앞두고 불법적인 일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할 결심을 한다. 합법적인 직장을 구할 결심, 여자친구에게는 프러포즈할 결심, 딸에게는 사랑을 듬뿍 주는 당당한 아버지가 될 결심,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는 믿음직한 아들이 될 결심을 한 하루의 끝자락. 모처럼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나선 길에 그의 인생을 뒤바꿀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과잉진압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제목이기도 한 프루트베일 역(Fruitvale Station)이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역 이름. 외화는 국내 개봉과정에서 원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개인적으로 원제목보다 더 좋았던 타이틀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꼽고 싶을 만큼 영화의 스토리와 메시지가 모두 담겨있는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바. 오스카는 새해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예기치 못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출동한 경찰들이 싸움에 연루된 사람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으로 오인해 발사한 권총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했는데 실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비무장상태의 흑인 청년을 향해 색안경을 끼고 과잉진압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논란 일기도 했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사건에 대한 감독의 견해를 주입한다거나 오스카의 죽음을 섣불리 동정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오스카 그랜트의 마지막 하루를 공들여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나쁜 길에 빠지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믿음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청년의 어떤 하루를 보게 된다. (제목 그대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폭력이 초래하게 되는 결말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이러한 폭력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감독은 사건이 발행한 후 오스카가 ‘한 번도 나쁜 짓을 한적 없는 성직자’ 혹은 ‘죗값을 치른 괴물’로 양분되어 그의 인간적인 부분이 지워져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 개인의 삶이 사회 안에서 이토록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오스카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밝히며 영화를 통해 오스카 그랜트의 삶이 녹아있는 하루를 밀도 있게 그리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영화로 만들어 진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감독이 이야기한 “오스카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결코 가볍게 넘겨지지 않는다.


마리’s CLIP
“내가 지하철 타라고 했어요. 내가 시킨 거예요. 아들이 다칠 줄 몰랐어요.”


우리는 예기치 못한 일을 겪게 될 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이 왜 오스카의 하루를 이토록 공들여 보여주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에’라는 가정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불꽃놀이를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지하철이 아닌 차를 타고 갔더라면, 만약에 낮에 마트에서 만난 여성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인지 영화의 마지막 오스카 엄마의 후회는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일상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 폭풍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잔해를 남기기 마련이니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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