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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우주의 먼지 한 톨이지만, <그래비티>

씨네아카이브 57. 나사가 사랑한 우주 영화 Part.1

by 마리 Jan 24. 2025

TMI를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모태 문과형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 이미 수학을 포기한, 이과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모태 문과형. 크게 힘든 점은 없었지만 아쉬운 점은 있는데 바로 우주를 향한 호기심과 열망을 나의 미미한 두뇌와 지식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이랄까... 대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하는데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우주 영화하면 떠올리는 대표작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를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57. "나사가 사랑한 우주 영화" 전문 읽기



<그래비티 (Gravity)>, 알폰소 쿠아론, 2013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래비티>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주인공이 우주를 떠도는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히는 사고로 우주를 표류하게 되면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제86회 아카데미에서 무려 10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미술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7개 부문(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 음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이는 역대 SF영화 중 아카데미 최다 수상으로 감독상 수상은 최초라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우주를 표류하게 된 주인공의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분투’로 굉장히 단순하다. 그러나 간결한 플롯 속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명료한 서사를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특히 우주 공간을 체험한 것 같다는 후기가 많았을 만큼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러닝 타임도 90분으로 딱 떨어지기 때문에 2시간 이상 넘어가는 영화를 힘들어하는 이들도 좋아할 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90분의 러닝타임 역시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ISS 국제우주정거장이 지구를 한 바퀴 회전하는 시간이 90분이라고.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은 사고는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으로 불리는 우주 재난이자 1978년 나사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 박사가 주장한 가설로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들이 충돌을 반복해 파손된 인공위성 잔해가 지구를 감싸게 되고, 이로 인해 역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모든 현대 기술을 쓸 수 없게 되어 인류 문명이 퇴화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실제 우주를 떠도는 쓰레기만 1억 5000만 개가 넘고 크기도 다양하기에 근거 없는 가설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주 쓰레기가 치명적인 이유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인데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부딪힌 파편의 크기에 비해 파급력은 치명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인류 문명의 퇴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 우주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출처: 네이버)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는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히게 되고 산소도 소리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진다.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동료들을 모두 잃고 망망대해보다 더 막막한 우주에 남겨진 라이언 박사는 과연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까?


영화는 주인공이 겪는 고립의 공포를 우주의 신비함 이면에 가려져 있던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 지어 생생하게 담아냈는데 영화관에서 관람했을 때 우주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에 불과 한지를 보여주는 연출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우주의 먼지 한 톨인데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만큼 영화는 우주라는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광활함을 마치 관객이 체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인상적인 연출과 더불어 영화가 호평받은 데에는 주인공이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외적 투쟁 안에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인간의 내적 투쟁을 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 라이언은 딸의 죽음 이후 혼자만 살아 있다는 절망감에 소통을 거부하고 고요한 공간인 우주로 나온 인물이다. 우주에서도 타인과의 소통에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며 삶의 이유를 상실한 상태로 그려지는데 우주에서 벌어진 사고를 겪으며 ‘생존’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족쇄처럼 여겨졌던 중력의 대지에서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삶의 이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고 평론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죽지 않기 위한 생존’과 ‘살기 위한 생존’은 다르고 “죽지 않으려는 고투는 본능의 소관이며 이것은 결국 거대한 우주가 주는 공포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평이 인상적이었다. 우주로 도망 온 것이나 다름없는 라이언이 왜 절박하게 지구로 돌아가려 하는가에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었는데 주인공이 홀로 우주와 대면하며 죽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과정에서 “삶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닌 ‘살아 있으니 계속 살아야 한다’”라는 해석이 의미 있게 와 닿았다. 살다 보면 주인공이 겪은 극한의 고립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영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 것 같았다.


마리’s CLIP: “오프닝 시퀀스”

우주 영화인 만큼 이번에는 영화의 한 장면을 골라봤는데 <그래비티>는 롱테이크로 진행된 오프닝 시퀀스를 뽑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비티>의 오프닝 롱테이크 신은 관객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간인 ‘디제시스(diegesis)’적 시간과 영화 바깥에서 관객이 체험하는 러닝 타임인 ‘비디제시스(non-diegesis)적 시간’을 일치시킴으로써 사실성과 몰입도를 한층 더 높인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적 효과를 넘어 한 인간이 삶의 상징인 지구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삶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오프닝이 아닐까 싶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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