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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Oct 30. 2022

집안일, 그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하루 종일 대청소를 했다.     

외주 받은 일처리를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또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고 그 지저분함은 고스란히 나의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그런데 청소를 하면 할수록 자꾸만 억울해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허리 펼 시간 없이 일을 하는데도 하나도 표시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장 정리 옷장 정리 책장 정리부터 손을 대야 하니 당연한 결과다.     

집안일이란 …. 늘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인 걸 알지만….     

하루 두세 번 식사 후에 난장판이 되는 식탁 위아래를 보며 치미는 화를 견뎌내는 나는 역시나 주부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나도 바깥일 열심히 하고 돌아와 누군가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매일 하루의 피곤을 풀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

하지만 왠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못할 거란 슬픈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며칠 전에는 요즘 배달음식 먹는 횟수가 잦다며 난 알아서 먹어도 애들한텐 요리해서 줘 라며 남편에게 톡이 왔다.     

< 직접 해주던지. >     

이라고 답문을 보냈더니 어쩐지 집에 돌아와선 잠자코 청소를 돕는 척을 했다.     

13년간 쌓아온 데이터로 동거인이 폭발 직전인 것을 감지했겠지 싶다.     

사실 노동의 양 보다는 해도 해도 끝도 없고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도 않는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이 오롯이 나의 몫인 게 그게 늘 불만의 원인이다.     


언젠가 한 번은 집안일하는 시간을 좀 줄여볼까 해서 …     

정리정돈이 시급한 아이들 방과 주방을 정리 전문가에게 맡겨 볼까 하고 견적을 받아 보았다.

그 당시 프리랜서로 맡아하고 있던 일의 양이 많아져 두 아이 육아하며 일하기도 바빠 집 안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단순히 청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고 계절이 바뀌면서 옷장 정리도 시급해서 정리정돈 업체에 문의를 했었다. 집 안 전체를 다 할 필요는 없어 보여

옷과 장난감이 모여있는 큰아이 방 하나 그리고 점점 지저분해지는 주방을 정리 정돈하는 데에 견적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80만 원이라는 가격이 나왔다.

그것도 최저 가격이었다. 100 이상을 부르는 곳도 있었다. 

견적서에 따르면 공간이 집의 일부이긴 하지만 수납 전문가 네 명이서 4시간 동안 집안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을 줄이는 것도 제시간에 끝내려면 안된다고 했다.  

 

견적 받은 비 용서를 들여다보며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상한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잠깐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려보고자 했던 이 일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하던 일의 일부였다. 

장롱 속 묵은 계절의 옷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일. 주방 곳곳의 가전과 접시들을 씻고 닦고 정리하는 일 아이들 침구를 갈아주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일…..     

네 명이 붙어서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13년간 무료로 해주고 있었단 말인가 … 아 우리 집 방과 주방 거실 모두를 생각하면 몇십만 원이 아니라 몇백만 원의 수당을 받아야 하는 일일지도 ….. 무보수로 다시 한번 혼자 고생을 할 것인가 큰맘 먹고 전문가를 부를 것인가 고민하다 역시나  큰 돈을 청소를 위해 쓰는 게 아까워  참고 말았다. 어차피 해도 티 안나는 일에 또 한번 온 몸을 갈아넣어야 했다.

    

해봐야 티도 안나는 일들은 왜 다 주부의 몫일까.      

바깥일을 하다보면 회사의 업무에도 그레이 존에 해당하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인데 누가 해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은 일들이 바로 그레이 존의 영역이다.

이런 업무들은 표류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하게 되지만 그에 대한 인센티브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결혼하는 순간 나라는 사람은 그레이존에서 한 발짝도 벗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사분담이라는 말을 아직도 제3 외국어처럼 어렵게 받아들이는 남편을 보며 매 순간 함정에 빠진 기분을 느낀다.

   

깨끗해진 집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열심히 만든 음식들을 식구들이 먹는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낀다는 주부 9단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나는 청소를 하는 순간에도 식사 준비를 하는 순간에도 또 더러워질 거 뭐하러 애를 쓰나 내일은 또 뭘 해먹여야 하나 하는 짜증과 허탈감만 드는 사람이기 때문이겠다.               

내가 무언가에 의지를 불태울 땐 그것의 원동력은 바로 성취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취감을 집안일에선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주부로서의 나의 딜레마이다.           

그렇다 나는 집안일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이렇게도 길게 주절주절 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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