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가 Oct 30. 2022

밥, 이놈의 밥

요 며칠 냉장고가 터져나가도록 꼭꼭 채워진 반조리 식품들, 그리고 택배로 보내주신 친정엄마의 반찬과 김치 덕에 마음이 푸근하다.     

아, 주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 끼 메뉴 걱정만 없어도 이토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라니...     

가끔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혀 들어온 이후,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멈추지 않는 밥의 굴레에 발목이 잡혔다는 생각에 몹시 우울해진다.     

주변의 많은 어머님들을 보라!! 주름이 얼굴에 깊게 새겨진 연세에도 아직까지 밥의 노예가 되어 둥지 안 새끼들에게 먹이를 잡아다 넣어 주는 어미새 마냥 식구들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만드는 일을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살고 계시지 않은가...     

엄마가 해주시는 밥,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자란 나 역시 과거의 과오가 있기에 주부의 부엌살이... 이것이 불공평하니 마니 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쬐끔은 마음이 뜨끔거린다.          

한동안은 밥솥에 밥만 해놓으면 냉장고 속 반찬,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냉동식품들 덕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보낼 수 있어 한시름 놓이긴 한데 ...     

사실 귀찮음이 온몸에 번진 날은 반찬을 꺼내고 냉동식품을 레인지에 돌리고 밥을 푸고 반찬 뚜껑을 여는 행위... 이마저도 버겁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밥을 차려야 한다는 숙명 자체에 질려서 온 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질겁을 하고 축 늘어져 버리는 그런 날이 있다.     

(게다가... 우리에겐 설거지라는 놈이 그 뒤를 기다리고 있다.)     

밥 한 끼에 들어가는 노동력이 만만치 않음에 늘 마음이 불편하다.     

.     

죽음의 신 하데스의 명령으로 언덕 위에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끝도 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 신화를 두고 카뮈는 부조리를 말했고,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에 대해 통찰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시지프스의 신화를 두고 삼시 세 끼에 대한 비극에 대한 이야기라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 요즘 세상엔 배달 음식도 많고 외식거리도 많다지만.... 결혼한 여자들에게 있어 식구들에게 무엇을 먹일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모두에게 통용되는 부채감이 아닐까... 밥을 하던 안 하던 식구들이 굶으면 죄책감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아마 나는 맛있게 먹어주는 식구들 보며 밥 짓는 보람을 느낀다는 고수들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 할 듯싶다.     

잘 먹으면 잘 먹는 대로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다음번 끼니를 또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이 늘 존재하고 있으니...     

필시 내일 아침에도 학교 갈 아이들 아침을 챙기느라 구시렁구시렁거리며 주방을 서성일께 분명하다.     

밥밥. 아 이놈의 밥.          


이전 01화 집안일, 그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