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내년에 결혼을 한다.
품성이 너그럽고 온화한 동생은 자라면서 한 번도 누나들에게 대든 적도 부모님 뜻을 거스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줏대 없이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 자기 기준만큼은 단단하고 뚜렷해서 입시와 취직 이직을 거친 지금도 흔들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다.
예비신부 곧 올케가 될 친구와도 십 년 넘게 연애를 이어올 정도로 지고지순한 면도 있다. 친정 엄마가 가지신 아들 부심에는 성공한 자식에게 느끼는 보람과는 조금 다른 단단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아마 동생의 이런 품성 때문일 것이다.
동생이 결혼에 대해 허락을 받을 때 양가 부모님들께 결혼 준비는 모든 걸 둘이 알아서 준비한다고도 미리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결혼 과정 중 불필요한 의식은 다 없애고 두 사람 보금자리 마련하는 데에만 보태겠다고...
혼수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아 조금은 서운하다는 엄마도 동생의 이런 결심에 시절이 바뀌었으니 알아서 하도록 지켜보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이 올바른 흐름 속에서 차마 부모님께 표현하지는 못할 억울함이 생긴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할까.
나와 남편이 결혼을 준비 할 때는 양가의 신경전도 상당했고 심하지는 않지만 간섭도 있었다. 두 집안 모두 장녀 장남의 결혼이라 더 그러했으리라
그때의 나는 드레스도 웨딩촬영도 결혼식도 별 관심이 없었고 전통혼례식으로 간단하게 식을 하고 끝냈으면 했었다.
혼수 할 돈으로 집사는데 보태고 싶었고 예물도 거추장스러워 각자 가지고 싶은 거 하나씩 사주는 건 어떨까 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을 전해 들은 양가의 부모님들은 크게 노하셨다.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에게 할 건 해야 되지 않겠냐며 연락이 오셨고 딸 가진 죄인의 입장이 되어버린 엄마도 그 도발에 결혼식 간섭하기에 동참해 버렸다.
충격적이라 아직도 기억나는 말은 “함 같은 절차는 없애자.”했더니 “너네가 상놈의 자식이냐 ”라고 꾸중을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불과 13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이효리 언니가 나보다 더 빨리 스몰 웨딩을 치렀다면.... (아마도 그 이후로 일반인들에게도 스몰 웨딩이 유행이 되었던 것 같은 생각에...)결혼식 문화가 조금만 더 빨리 바뀌었더라면...
나도 결혼식을 내 의지대로 진행 시틸 수 있었을까... 하는 작은 회한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의 결혼식이 이제와 미련이 남는 것은 결국 남들 하는 대로라는 불필요한 시선을 이기지 못했다는 패배감 때문이지만 자식 가진 부모가 그 맘때쯤 누리는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양가 부모님들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뒤늦게 억울함을 느낀다고 해서 동생이 나처럼 결혼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알아서 척척 온전히 두 사람의 힘으로만 새 가정을 꾸려나가겠다는 예비부부의 포부에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 진다. 두 사람 행복하게 잘 사는 일에 혼수가 뭐가 중요하고 예단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 역시 동생의 이런 현명한 출발에 묵묵히 응원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게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도 지금도 이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