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이 가까운 사람들을 늘 부러워하는데...
그중 팔 할은 "엄마 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친정에 가면 귀환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엄마가 해주시는 따끈한 밥이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라 외갓집을 찾은 나와 두 딸들은 할머니의 푸짐한 밥상에 호강이라는 걸 누릴 수 있었다.
끼니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 차려 주는 밥이 아닌 차려진 밥을 얻어먹고 나면
두 아이 엄마에서 다시 부모님의 귀한 딸로 신분이 회복되는 것 같은 이 유치하고 이상한 감정이 좋다.
한없이 보살핌만을 주는 엄마의 그 노고가 송구스러우면서도 말이다.
왜 엄마만 밥을 해야 하는가 아빠도 밥을 해라 하고 부르짖으면서도 한평생 나 역시 나의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기만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애플티비 시리즈인 <파친코>를 보면서 눈물범벅이 되어야 했던
장면도 바로 엄마 밥과 관련이 있다.
곧 일본으로 시집을 보내야 하는 딸을 위해 그 시대엔 구하기도 어려운 쌀을 눈물로 호소하여 사온 뒤 그 쌀로 정성스레 지은 그 산처럼 쌓여 있던 하얀 쌀밥 앞에서...
그 밥상이 의미하는 바를 굳이 말로 나누지 않아도 실감하며 눈물을 삼키는 두 모녀 때문에 어찌나 눈물을 쏟았던지....
아마 선자는 그때 먹은 밥심으로 한평생 모진 인생의 풍파도 버텨냈으리라...
들째를 가지고 입덧이 심했을 때도 거의 아사 직전이던 나를 살려준 것은 엄마가 만든 유부초밥이었다.
엄마는 소풍 때마다 삼단 도시락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 보내 주시곤 했는데 거기엔 김밥과 함께 꼭 갈아 넣은 소고기와 야채를 볶은 다음 단촛물에 버무린 밥과 함께 섞어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셨다.
도시락이 푸짐했던 이유는 두 동생들 돌보며 일까지 해야 했던 엄마가 그동안 표현 못했던 사랑을 야심 차게 보여준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엄마의 유부초밥은 마지막에 밥 위에 계란 물을 입혀 노릇하게 구워 달달하고 고소했는데 이제 와서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던가 깨닫는다.
지나가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을 게워내고 싶었을 그때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그 유부초밥이었던 이유는 몸이 힘드니 절로 생각나지만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나만의 소중한 유년기의 추억과 함께 아직도 그때처럼 보살핌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매 식사마다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시는 게 대단해 보였는지 밥 먹다 말고 둘째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할머니는 밥 먹을 때마다 요리를 하시네요.
그래서 할머니 밥은 맛있구나. 우리 엄마는 맨날 밀키트로 밥해요"
여름방학 동안 삼시 세 끼에 대한 압박에서 날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밀키트들이건만 내 이런 요행을 두 딸들이 주시하고 있었다는 게 조금은 뜨끔했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왠지 조금 미안했다.
먹이고 치우고가 인생의 딜레마인 나는 아마도 세월 지나 집밥이 그리울 두 딸들에게...
지금 내가 친정엄마에게 받는 감동과 사랑은 못 줄지도 모르겠다.
밥하기 싫어하는 엄마라 미안하다. 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