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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Oct 30. 2022

19호실로 가자

ㅡ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ㅡ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을 몇 번 읽고 나서야 첫 문장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19호실로 가다는 기혼여성으로서 내가 가장 깊게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수전에게 그녀의 가정은 정상과 상식의 범위를 지키는 삶의 기준이었고 가정을 유지하는 일이 지성의 삶이었다. 19호실을 찾아다닌 수전, 아니 19호실로 내몰린 그녀는 처음부터 그녀의 이 선택이 완전한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깨달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애인이 생겼다는 오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던 자유는 곧 그녀의 정체성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자신의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것은 이해받지 못할 거란 걸 알아서 아닐까.

 이해와 존중이 없는 결혼 생활은 이미 균열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애초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과 육아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한 여성의 심리적 문제로만 몰아가는 것 역시 사회적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가스 라이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세상은 결혼과 육아가 기혼여성에게 부여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인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가정부 소피가 수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보고 느꼈듯, 그것이 기혼 여성의 완벽한 정체성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고유의 수전, 그녀 스스로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의 불안함과 괴로움이 전이된 듯 책을 읽는 동안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계속 교차됐다. 자신이 얽혀있는 모든 것과 동떨어진 공간을 찾아다니며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수전이 애처롭게 느껴진 이유이다.     

이 책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남겼던 후기를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을 읽고 내 마음에는 공명이 일었다. 아마 이만큼 주인공에게 공감되었던, 아니 빙의되었던 작품은 그 전에도 당분간의 미래에도 없을 듯하다.          

다시 만난 수전에게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딘가에 숨겨둔 19호실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아니 그마저도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이 세상의 많은 수전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도무지 변할 생각이 없는 기혼 여성들의 삶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뿐이다...               


" 아이들은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 줄 수는 있지만 ,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되고 “280p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가며 스스로 돈을 벌던 여자가 생계와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모두 남편에게만 의존하게 되었을 때 남몰래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 282p          

" 이렇게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아내 역할을 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어려워졌다, 너무 쉬워서 마치 자신이 어머니나 아내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 319p          

“"1년 전부터 나는 그 더러운 호텔방에서 낮 시간을 전부 보냈어. 내가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야. 사실 그 방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 “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여왔다.”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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