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쪽 무릎에는 100원짜리 크기만한 흉터가 있다. 벌써 함께 한지 30년이 된 흉터이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자전거 타는 게 서툴 던 내가 혼자 나와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다 넘어졌는데 하필 무릎에 유리가 박혔던 것.
엄마에게 혼이 날까봐 집에 돌아와 몰래 샤워기를 틀어 놓고 상처 부위에 묻은 흙을 씻어낸 뒤 무릎에 박힌 유리를 빼려다 수상한 내 뒷모습을 확인하러 나왔던 엄마에게 들켜서 오히려 더 크게 혼이 났었던 것 같다.
그때 맞은 등짝이 무릎에 박힌 유리를 빼는 것 보다 더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깊이 박힌 유리에 떨어져 나간 살점은 얼마 후 다시 차올랐지만 오래도록 원래 색을 찾지 못하고 착색된 채로 흉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한 때는 한눈에 보이던 진하던 흉터도 나이가 드니 희미해져 지금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봐야 아 이것이 흉터구나 할 정도이다.
큰아이 생일이 다가올 무렵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게 무엇이냐 물어보기 위해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큰아이는 갖고 싶은 선물로 자전거를 이야기 했고 엄마는 나에게 자전거는 위험한데 하며 또 내 흉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유독 자전거 이야기만 나오면 과거를 끄집어 내신다. 내가 일본에서 잠시 사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통학한다고 했을 때도 집에 안부 전화만 하면 자전거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자전거 조심히 타라. 니 무릎에 상처도 자전거 타다가 난거 아니냐....." 하고 말이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엄마를 화나게 하고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게 하는 자전거에 대한 원한은 내 무릎에 남아있는 흉터 때문이 아니라 바쁘고 힘든 일상 때문에 하루 종일 돌보지 못한 그 아이가 밖에서 몸에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내 흉터는 엄마에게 힘든 과거를 끄집어 내는 일종의 트리거였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내 몸에 난 흉터를 볼 때 마다 그 당시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문제들, 그것을 풀어내느라 나를 돌보지 못한 무참함이 떠올랐던 것 같다 . 이런 것들은 그냥 왠지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그런 거였구나... 깨닫는다.
엄마 인생의 풍파가 가장 심했던 날들, 그 시절의 상처를 기억나게 하는 흉터는 내 무릎으로 와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서 걱정하는 엄마에게 그까짓 흉터가 뭐라고, 아니 그럼 다치는 게 무서워서 우리 애를 평생 자전거도 못타는 애로 만들 거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건 그런데.....” 하고 엄마도 웃었다.
그래, 그까짓 흉터가 뭐라고...
그건 나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지나온 것들에 얽매이지 않을 것. 상처를 응시하지 않을 것.
큰 아이는 이제 제법 자전거에 익숙해졌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함께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엄마가 손녀의 능숙한 자전거 타기 솜씨를 확인하게 되면 이제 자전거 소리만 나오면 꺼내는 내 흉터 레파토리는 끝을 맺을 수 있으려나....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엄마,나, 손녀 우리 삼대가 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다닐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엄마의 무릎 관절이 더 나빠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