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란 말만 들어도 방방 뛰는 두 아이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혹시나 딸들이 나에게 손자 손녀를 만나게 해 준다면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하고 말이다.
손녀사랑이 끔찍한 친정 엄마를 보며 아마 나도 저렇게 되지 싶다가도 내 배 나아 낳은 새끼도 아닌데 정말 손주를 보면 그 핏줄이란 것 이 땅겨 원초적인 사랑이 샘솟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 같은 게 있었다.
친정엄마는 나의 두 딸들을 보며 잃어버린 과거를 잠시 들여다보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삼 남매 키울 적엔 사는 게 너무 바빠 이쁜지도 모르고 키웠는데…. 손녀들을 보면서 아 너네가 그때 참 예뻤는데 하고는 자꾸 추억에 잠기게 된다고 … 그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이 손녀들에게 가 닿는 모양이다. 엄마는 잠투정이 심한 우리 집 아이들이 친정에 가서 잠을 잘 때마다 새벽 내내 잠결이라 눈도 못 뜬 채로 아이들이 발로 차 버린 이불을 끌어다 다시 발부터 목까지 포옥 덮어주신다. 그러고는 아이들 등을 토닥토닥해주시거나 이마에서 턱까지 얼굴을 한번 쓸어 담고는 아유 내 새끼 하며 다시 잠드신다.
우리 삼남매가 어렸을 때도 그러셨을까? 일하느라 지친 그 손길로 낮에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이불을 매개 삼아 건네 왔을까?
미처 붙들지 못했던 자식들과의 시간을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그 시간을 재현하고픈 기분을 아주 약간은 이해할 것도 같다.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하고 간지럽고 기분이 좋아진단다.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늙어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웬만하면 딸들에게 결혼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할머니가 된다면”이라는 이 상상이 예측불허의 미래를 점쳐 보는 일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손녀 손자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따뜻한 할머니가 되던 홀로서기에 성공한 독거노인이 되던 어느 쪽이든 간에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호칭이 바뀔 어느 먼 훗날 남들 눈에 꼬장꼬장한 노인네로 비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