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가 Oct 30. 2022

삶의 뿌리

엄마라는 힘

엄마가 심어주고 가신 들꽃들이 꽤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멀쩡한 화분도 죽여 놓는 나로서는 매일 아침 화분들을 들여다보며 감탄이 나오는데 아마 식물들도 거두어 준 사람의 손길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나눠 받는구나 싶다.
.
62세이신 엄마는 아직 요양원에서 일을 하신다.
엄마의 회사 생활은 젊은 사람들의 회사 생활 못지않게 치열하다.
업무 과실을 남에게 돌리려는 상사와의 눈치게임,
회사 시스템의 부조리,
아부의 향연과 그것을 꼴 사나워하는 사람들 간의 감정 소모 같은 것을 듣고 있으면 새삼 회사생활이라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제삼자만 가질 수 있는 청취의 재미가 쏠쏠하다.
.
게다가 할 일은 똑 부러지게, 그리고 할 말도 똑 부러지게 하는 엄마는 회사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항상 에피소드가 넘치신다.
엄마 말을 옮기자면
원장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신다고...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엄마도 참 씩씩하고 정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 3남매가 아직도 엄마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 일지도...
그런데 한편으론 좀 슬프다.
어떤 자리에서건 부당한 건 못 참고 지나가는 엄마는 어떻게 자기 인생의 부당함은 참고 이 긴 세월을 보내오고 있을까...
.
나는 엄마와 내 나이의 차 보다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엄마를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집에서 같이 살던 오랜 시간 그때의 내가 엄마를 가장 모르고 지냈다.
엄마를 너무나 당연한 사람으로 생각했건 거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나도 엄마가 되어보고 나서야 조금씩 젊은 날 엄마의 인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어떻게 참았어?"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엄마니까"...라고 대답하겠지.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이
얼마나 뼛속까지 을의 언어인가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뿌려놓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
들꽃을 화분에 옮겨 심으시면서
아무래도 화분에 심어 놓으면 뿌리를 살게 해주는 힘이
땅 힘보다는 못할 거라고 하셨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힘은 묵묵히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모든 삶의 원천 같기도 하다.
땅힘. 살게 하는 힘.
우리 삼 남매가 살아가는 힘.
.

이전 09화 할머니가 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