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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Dec 28. 2023

안녕, 나는 김물범이야.

울릉도 앞바다 체험기

학포 해수욕장에선 파도가 조금 높고 몽돌이라 휩쓸리면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물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맑은 물을 지척에 두고도 물에 들어갈 수 없으니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나 계획 없던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을 했는데, 다음 목적지는 사동해수욕장이다. 


사동해수욕장


사실 우리 중에 정상이 한 명쯤은 있어야 했는데, 다들 정상적인 범주에선 조금씩 벗어난 편이라 아직 숙소에 짐을 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갈아입을 옷만 챙겨 나와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가져온 음식은 아이스 박스가 잘 지켜줄 것이라 확신을 하고, 바다에 먼저 들어가기도 했다. 친구가 혹시 몰라 가지고 온 텐트를 펴고 그 안에서 한 명씩 바다에 들어갈 옷을 입고 나왔다. 나는 쉽게 그을리는 편이라 기장이 긴 워터 레깅스를 입고 그 위에 검은색 래시가드를 입고 나왔는데, 8월의 여름날엔 더운 복장이었다. 


이건 우리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더워서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뛰어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합리화를 해 봤지만 이미 늦었다. 그냥 정상적이길 포기하고 물속으로 들어왔다.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한 터라 오리발이며 수경을 준비했고, 스노클 장비도 챙겨 왔다. 친구들은 아직 바다에 익숙하지 않고, 수영을 잘 못하는 편이라 구명조끼를 하나씩 구입했고 수영복 위에 조끼를 입고 바다에 들어왔다.


동해 바다는 많이 가봤었다. 대구에서 경주나 포항이 가까워 자주 다녔고 여름이면 꼭 한 번씩 바다를 보러 가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바다와는 색감부터 달랐다. 내륙에 가장자리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 망망대해의 섬이라 그런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투명도와 색이 내가 알던 그 색과 전혀 달랐다. 


바다에 몸이 완전히 잠겨 물에 젖었을 때 나는 머리를 박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과거의 나에게 고마웠다. 이집트의 깊은 바다에서 프리 다이빙을 배운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던지 하마 타면 물 위에만 둥둥 떠 다니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고기들을 그저 그림처럼 바라보고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다니며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프리 다이빙을 배워 둬서 울릉도 여행에 플러스알파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깊이 들어간 바다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고, 물속 조류의 영향도 받지 않은 듯 고요한 바다의 상황은 더욱 좋은 조건이었다. 프리 다이빙은 공기통을 들고 들어갈 필요 없이 오롯이 나의 호흡으로만 잠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컵라면과 같다. 스쿠버 다이빙을 가려면 장비 대여부터 시작해서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야만 했는데, 프리 다이빙은 조금 간편하게 할 수 있어 즐기는 편이다. 물론 친구들에게 버디를 부탁해서 혼자 물에서 정신을 잃거나 사고에 대한 대비는 미리미리 해두었다. 


점심시간을 약간 건너뛴 시간이라 배는 고파왔지만 난생처음 바다에 들어가 본 사람처럼 여기저기 손이 닿는 곳이라면 호기심 어린 수경 아래 눈동자를 움직였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주 차가운 물이 흘렀고 8월의 태양에 데워진 수면에서만 유영을 하던 나는 차가운 물에 스치듯 닿았지만 움츠려 들었다. 등골까지 서늘하게 만들어 버리는 차가운 해류는 정말로 바다의 신비로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 온도가 고르지 않은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8월의 한 여름에 느낄 수 없을 온도의 물이 바닷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웠다. 그 환경을 살아내고 있는 물고기도 대단하고 수초들도 다시 보였다.


한참을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가며 차가운 물과 태양에 데워진 물에 번갈아 몸을 담그니 내 체온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그래서 내 몸의 온도 조절 장치에서 파업을 선언하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목도 말라왔기 때문에 타이밍 좋게 물밖로 나와서 뜨거워진 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계속해서 현실감이 없었다. 울릉도 바다에 있다는 사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데다가 숙소에 짐을 풀기도 전에 짠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있다는 현실이 말이다. 아침을 먹긴 했지만 아직 점심을 먹지도 못했는데, 바다를 그토록 기다린 니모처럼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렇게 놀아 버렸다. 휴가를 즐기고 싶었던 열망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 친구들과 바람을 쐬러 나온 이 시간이 좋은 건지 구분은 안 가지만 딱기 구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있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물에 올라온 뒤에도 눈은 늘 바다를 향해 있었다. 친구들이랑 시답잖은 이야길 할 때도 눈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평소에 바다를 즐긴 시간이 적다. 바다를 다녀본 시간이 적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오지 않는 이상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기만 했지 실행에 옮긴 적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왜 그런 적 있지 않나? 바다를 너무나 보고 싶어서 바다가 나오는 영상도 보고 사진도 보지만 막상 바다를 갈려고 차에 앉으면 굳이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렇게 경험이 적었던 것 같다. 


내리는 볕에 달궈진 뜨거운 시멘트 바닥과 내 몸의 온도가 어느 정도 맞아질 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친구 둘은 이미 바다를 다 즐겼다며 바다에 더 이상 안 들어가도 될 것 같다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샤워장의 자리도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바다에 다시 몸을 넣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적응된 바다의 조금 더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물도 넉넉히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다시 바다 들어간 준비를 하는데, 아뿔싸 물이 차갑다. 


몸이 데워지고 볕에서 온도를 높이고 나니 바닷물이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도 밖에 온도 보다 물의 온도가 낮아서 시원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그 느낌을 받았다. 충분히 몸에 물을 적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움츠린 몸을 곧게 펴곤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체크인 시간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바다 위를 유영했다. 


동해바다 물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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