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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Dec 26. 2023

체크인은 3시입니다.

학포 해수욕장

간밤에 내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직 바다 위, 배에서 눈을 떴다. 술을 먹고 올라온 것까지 기억이 나고, 양치를 하고 잠이 들었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나는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월요일부터 빠짐없이 일을 했고, 수영도 다녀왔다. 심지어 금요일은 수영장에선 오리발 수영을 하기 때문에 엄청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거기에다가 배 위에선 신나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무대로 뛰어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피로도는 생각보다 심했었다.


그렇게 지난밤이 눈 한번 깜박거리는 틈에 지나가버렸다. 난 오랜만에 신선하게도 배 위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우리 배는 해가 뜨면서 울릉항에 도착을 했다. 큰 배는 물 위를 떠서 달리는 배 위에 누웠지만 전혀 느낌도 없었고, 편안했다. 진지하게 지난날을 뒤돌아 생각해 보면 진짜 약간의 흔들림 정도만 있었다. 멀미 하나 없이 잘 자고 일어나 간단히 씻고 짐을 정리했다. 객실엔 화장실이 있었고 3개의 2층 침대로 6명이 한 방에서 잘 수 있는 방으로 배정받았다. 코골이가 심한 분들이랑 같이 배정을 받았지만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죄송한 마음으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와서 마주한 복도는 사람들의 길고 긴 줄이 이어져 있었고, 다른 방에서 자던 친구들은 다른 줄에 서 있었다. 긴 줄은 멈춘 듯 보였지만 조금씩 앞으로 가는 중이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세 친구들을 만난 후 같이 밖으로 나왔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울릉도의 첫인상이 되었다.


울릉도 도착


우리보다 먼저 배에 올랐던 차를 기다리며 멍하니 배 뒷 꽁무니만 보고 서 있었다. 차는 들어간 순서대로 나오는지 반대로 늦게 들어간 순서대로 나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줄 서서 나오는 동안 차가 한 대씩 나오고 있고, 우리가 나와서 차량을 인도받는 곳으로 도착해서 조금만 기다리니 우리 차가 나왔다. 아직 차를 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린 유유히 빠져나왔다.


문제는 차를 타고나서부터였다. 차를 타고나서 이동한 곳을 지정해야 했지만 우리 중에서 누구도 이동해야 할 곳을 찾아 놓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간 게 아니라서 처음으로 어딜 가야 할지 정한 곳이 없었다. 계획을 해도 늘 계획적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별로 불편한 건 없었다. 그래서 허기를 느끼는 친구들의 의견에 따라 아침을 먹으러 갔다. 울릉도의 몇몇 식당은 이미 관광객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가게들이 생겨났고 우리도 그중에 한 곳을 다녀왔다.


맛있고 양이 많은 곳이라면 소개를 했겠지만, 그냥저냥의 메뉴였다. 국밥을 선택했는데 아주 맛있었다거나 양이 많아서 좋았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온 음식을 다 먹었고, 배는 어느 정도 불러왔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1인 1 메뉴를 강요하거나 차가운 응대는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암튼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와선 다시 어디로 갈지 생각에 빠졌다.


숙소가 정리가 되고 방에 짐을 풀려면 오후 세 시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그저 멍하게 보내야 했다. 울릉도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으니 다음 목적지로 학포해수욕장을 선택했다.


학포 해수욕장

사실 울릉도 어딜 가던지 가장 맑은 물의 바다를 만날 수 있고 해안선을 따라선 비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울릉도의 모든 지역이 관광지로 선택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학포리'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거 이곳을 방문했던 조선의 감찰사 이규원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학포였다. 그는 울릉도 입도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은 해선 안 될 일이지만 절벽에 자신이 도착했다는 글을 남겼다. 임오명 각석문이라고 하는 암벽에는 "검찰사 이규원, 최용엽, 고종팔, 유연우 임오오월일"이라고 쓰여있다. 이 암벽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장이 되어 있다.


200여 년 전 그들이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해서 첫 발을 디딘 곳이 학포마을이다. 우리도 울릉도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학포 마을이니 조선시대 감찰사들과 오마주 되는 느낌이 든다. 비록 흔들림이 없는 큰 배를 타고 입도했고, 자동차를 타고 이곳을 방문했지만 울릉도 처음을 학포에서 시작한다는 점에 건 조금 닮은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포 마을은 캠핑장과 해양 레저 시설이 유명한 곳이다.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몇 해 동안이나 국가 주관 개발정책에 학포리가 포함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곳 중에 아나였다. 나도 첫인상은 깨끗하고 생동감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빨간색 컨테이너 건물은 이곳의 맑은 물을 볼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과 체험 스노클링을 전담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건물을 돌아 바다를 보고 있으면 이곳에 왔으면 바다에 안 들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스노클이나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니 역시나 한쪽에서는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들어가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검은 슈트를 입고 둘러 서 있으니 독도에 서식했다던 강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소 높아 보이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공기통을 받아 든 다이버들은 머리를 최대한 물속에 욱여넣으면서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수욕장이라고 검색하고 온 학포 해수욕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래 해변은 아니었다. 모래 대신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매력적인 곳이다. 까맣고 동글동근한 몽돌에 파도가 왔다 가기만 하면 '자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자갈인가?) 몽돌의 자라락 거리는 소리와 파도가 밀려 들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친구들은 만나서 계획에도 없던 울릉도를 오게 되는 것만 해도 좋았는데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파도가 다소 높은 것 같아서 물에 들어가는 것은 삼갔다. 즐겁게 왔다가 안전을 무시해서 일어나는 사고는 여행 내내 기분을 망치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 만지고 한참을 듣고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물론 정해진 다음은 없으니 이제부터 정해야 했지만 앞으로 봐야 할 곳이 더 많이 남아 있어 즐거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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