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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Dec 21. 2023

아마추어들. 여긴 너희가 낄 판이 아니야.

나 지금 떨고 있니?

울릉도를 들어가는 배를 예약했다. 친구들이 정한 일정에 맞추는 방법으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어떤 배를 타고 갈지, 어떤 종류의 배가 있는지 충분히 알아본 적은 없었다. 글을쓰는 지금 인터넷을 열어 검색을 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편 수의 배가 출항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경험은 흔하지 않았고 나의 경우엔 우리나라 여행에서 처음으로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상북도, 특히나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 울릉도를 떠올리면 형제의 도시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의 생활 반경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몇 명의 울릉도 출신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오히려 서울이나 제주도에서 대구에 정착하고 있는 분들보다 더욱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울릉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도시며, 생각보다 수월한 여행으로만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오히려 울릉도 여행의 매력을 해외를 다녀온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처음부터 신이 났다.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니. 근현대사적으로 큰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가 난 경우가 있어 사람들이 꺼리는 경향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큰 배를 타 볼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대가 더 컸다. 꼼꼼한 신분 확인과 안전한 차량 선적을 마치고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여름밤바다의 뜨겁고 습한 바람에 땀이 났지만 컨테이너 안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사정이 딱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에어컨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탓에 바람이 나오는 송품구 앞에서만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에어컨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원한 바람도 나와 멀어져만 갔다.

멀미약은 옵션

야간에 운항하는 배는 약간의 로맨틱이 있었다. 어마하게 큰 배안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며 비행기 창문처럼 바람하나 셀 틈이 없는 창밖을 보며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기대했다. 오랜만에 누워보는 이층 침대의 위칸의 낭만도 한 스푼 들어가 있었다. 손에 들려진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배에 오르는 길에서 나름의 운치도 있었고, 설렘도 들기 시작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살짝 비릿한 향도 섞여 있었지만 여행의 아드레날린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승선 후 방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표에 적힌 좌석대로 움직였고, 매점이 있던 층 위로 올라가 내가 머무를 방에 가방을 두고 내려왔다. 다른 방에서 묵게 되는 친구들은 가방만 두고 다시 매점이 있는 층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침대는 총 6개가 있었는데, 출입구 쪽은 사람들에 들고나감 때문에 불편할 것 같아서 제일 안쪽에 있는 침대를 잡았다. 모두 이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선두로 들어온 터라 아직 한 방에서 지낼 사람들은 확인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친구들을 만났다.

저녁은 먹고 왔지만 조금은 늦은 승선시간 때문에 요깃거리라도 찾을 겸, 매점으로 향했다. 우리는 야식을 먹고 바로 올라가 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과한 음식보다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어묵탕을 주문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비어 있던 많은 자리 중 왼쪽의 4인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포항이라 그랬는지 어묵탕은 국물부터 시원한 맛이었고, 소주는 달았다. 환 잔 그리고 두 잔. 이렇게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잔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많았던 빈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홀이 컸던 탓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무대엔 새로운 조명이 들어왔다.


새로운 조명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조명과 함께 바로 들려오는 음악도 큰 배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처음 소주 뚜껑을 열었을 때와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스러운 정도였다. 마이크를 들고 나온 매력적인 목소리 톤을 가진 가수 분이 나오면서 신나는 노래가 귀에 들어왔고, 주변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아니 사실 가수분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게, 나오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좌중의 분위기를 휘어잡으셨다.  


노래의 선택은 없었다. 댄스로 시작해서 댄스로 끝나는 2-3곡의 메들리였다. 멈춤이 없는 아우토반의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 같은 속도로 달렸다. 가수 선생님만 달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확연히 빠른 속도로 회포를 푸신 분들은 이미 중앙 무대를 장악하면서 전국 노래자랑 1열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흥을 올리는 건 트롯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박자를 쪼개고 음률을 타다 보면 나도 어느새 전국노래자랑 일렬에 다가서있게 된다.


춤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다. 놀 줄 모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근데 이 분위기는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 예외는 없다.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너무 취해서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나 극강의 'I'를 가진 사람들만 앉아 있을 수 있는 분위기다. 우리 테이블의 친구들도 둘은 앉아 있고 나와 내 친구는 모르는 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차를 만들어 무대를 몇 바퀴나 돌았다. 노래가 두 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우린 겨우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겨우 돌아온 호흡에 웃음이 났다. 방금까지 뛰었던 무대를 보면서 그 속에 있었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신경을 안 쓰고 있다는 듯 우리가 들어온 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히려 내가 있을 때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시는 가수 분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 보다 먼저 오신 분들은 그 새 흥이 더 올라있었고,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더욱 화려한 춤으로 무대를 장악해 버렸다. 남녀가 없었고 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단지 신명 나는 노래와 춤이 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울릉도를 가는 배에 올랐을 뿐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흥이 올라왔고, 준비하지 못했던 한잔의 술이 있었다. 처음이라 지치고 힘이 빠져버려 더 이상 무대에 올라갈 수 없을 정도였는데, 무대에 올라있는 사람들은 흥이 더 올라왔다. 우리는 그저 이곳에선 아마추어였다.


울릉도를 들어가는 이 배 안에서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낄 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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