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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04. 2023

나랑 여행 갈래?

4인 4색의 울릉도 여행기

내 생일이었나? 아니었나? 사실 그날이 생일 때문에 모인 것인지 그냥 술이 한잔 마시고 싶어서 모인 날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며칠 전 비가 온 탓에 갑작스럽게 덥고 습한 대구 여름의 날씨 공격을 피해 들어간 대학가의 어느 노포에 미닫이 문을 오른쪽으로 쓱하고 밀고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성능 좋은 에어컨이 대구의 날씨가 무색하리 만큼 단단히 공기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더울까 싶어 마음 좋은 할아버지의 손에는 선물기가 들려있었다.


벽에 제멋대로 적힌 누군가의 다녀갔다는 글자가 순간적으로 어지럽게 눈동자를 흐트러트렸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곧장 메뉴판으로 눈에 돌렸다. 착한 가격에 몇 접시의 안주를 시키고 시원한 막걸리 두 병을 주전자에 담아 잔을 받아 들었다. 아직 안주는 나오기 전이지만 맛있는 술을 한잔 들이켜 버리는 건 다들 기본이다. 특히나 막걸리는 말이다.


사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고, 흥미롭다. 남의 회사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새로 들어온 부하직원이랑 겪은 일들까지... 나처럼 혼자 일하는 사람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들이 한 가득이었다. 가게엔 우리만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까지 더 한다면 재미있는 쇼츠나 릴스 20개는 넘게 보고 지나간 듯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주전자의 백탁의 막걸리는 이미 각자의 앞에 놓인 잔으로 옮겨졌고, 막걸리의 손잡이에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잡을 때 들어가는 힘이 전혀 들지 않게 되었을 무렵 우리는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리고 막걸리를 새로 시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나는 특별히 휴가 일정이 없었다. 학생들의 여름 방학이 짧은 탓에 그 짧은 방학이 나의 휴가를 잘라먹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건 그나마 그런 중에서라도 이렇게 가끔이나마 친구들이랑 같이 보내는 이런 시간이 마치 휴가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당히 말했다. 나는 너희들과 지금 이런 휴가를 보낸다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나를 보며 진심으로 안쓰러워했다. 그러면서 모인 5명 중 3명이 이번 휴가로 울릉도를 간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들은 부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말뿐만이 아니라 이번 울릉도는 현실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였다. 심지어 일정은 확정적이라 그날에 오가는 배 표를 예약했고, 숙소도 어느 정도 예약을 마쳤다고 했다. 일정이 여유가 있어서 자세한 일정을 짜놓은 건 없지만 울릉도 여행을 가는 것은 결정이 난 상태였다.


휴가가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없었지만 울릉도라는 섬은 나에게 환상의 도시였다. 제주도처럼 비행기나 배편으로 가는 곳이 아닌 오롯이 배를 타고 가야만 하고, 눈이 오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쉽게 나올 수도 없는 섬이니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 더욱 특별했다. 알겠지만 동쪽 끝 독도를 가려면 필수로 들러야 하는 곳이며, 화산으로 만들어진 섬의 탄생 이유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울릉도의 자연이 궁금했고, 어릴 적 흥얼거리던 오래된 노래 가사에 나오는 울릉도 호박엿과 오징어의 맛을 상상만으로도 무척 나의 침샘을 자극시켰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울릉도를 여행하는 기회가 조금 멀어질 것만 같았다. 대구라는 울릉도에서 나름 가까운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40년 동안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그 섬은 나의 여행 감각의 깨워줄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래서 곧장 계획을 세워 둔 친구들에게 내가 동행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친구들은 사람은 많을수록 재미있다며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다. 역시 든든한 친구들이 있으니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여행도 걱정 없이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술자리를 가진 후 다음 날 표와 숙소를 예약한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가는 배 편의 정보와 숙소의 정보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스마트 폰 속의 노란 상장에 숫자가 보이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당일에 울릉도를 오가는 배편 예약을 마쳤고, 친구가 숙소 인원도 추가해 줘서 숙소까지 예약이 끝나 버렸다.


만약 울릉도를 가고 싶어 혼자 이리저리 준비했다면 올해 안으로 울릉도를 갈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름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버려서 새롭게 무엇인가를 하려면 얽힌 타래를 풀어내야만 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때로는 즉흥적인 계획이 더 빠른 진행을 돕는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일단 내 지르고 나니,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변경하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순시 간에 정리가 되어버렸다.


나를 위해 쉬는 날을 만드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었다. 신나고 즐거웠다.


우연한 자리에서 듣게 된 우연치 않은 이야기는 평범하고 무료했던 나의 일상의 조용한 파문이 되었다. 잔잔하기만 했고, 고요하기만 했던 그저 그런 나의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이번 여행은 울릉도라서 특별했고,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라 더욱 특별했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여행을 포기하고 여전히 일상을 살았더라면, 친구들과 함께 하지 않고 나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여행을 기록해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나의 고요한 일상을 흩어 놓는 일이 있다면 가끔, 아니 아주 가끔이라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내가 제안할 때도 충분히 고민하고 제안하는 것처럼 상대도 이미 충분한 고민을 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제안이 나의 고요했던 일상을 바닥부터 저어 내어 신선한 동력을 선물해 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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