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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02. 2024

불 올려, 고기 먹자

물놀이가 끝나면 항상 따라오는 게 있다. 바로 라면,

원래 바다에서 놀던 강에서 놀던 꼭 물놀이가 끝나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파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게 하나가 있는데, 그게 라면이다. 라면엔 딱기 종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라면에 맛이 달라서 아침엔 무슨 라면이 좋고 점심엔 무슨 라면이 좋단다. 라면 맛이라는 게 다 똑같을 리는 없지만 나의 개똥 같은 철학으론 라면이 다 맛있기 때문에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간절하게도 라면이 먹고 싶었고,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면 지금의 피로를 다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에겐 라면의 축복은 없었다. 한 그릇, 아니 컵라면 작은 거 하나라도 있었으면 했지만 없었다.


울릉도 체크인


다만 우리가 체크인 한 숙소엔 발코니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옵션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이 숙소를 고르면서 고기를 굽겠다고 대구에서부터 고기를 준비해서 가지고 왔다. 어찌 고기를 배신할 수 있을까? 그게 라면이라도 말이다.


씻고 나오자마자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서 불판을 준비했다. 대구에서 사 온 고기는 소고기와 막창이었다. 아주머니는 불을 넣어 주시곤 곧장 내려가셨다. 불은 잘 붙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지만 어느새 불의 세기가 약해졌다. 나름 잘해주셨겠지만 숯이 잘못된 건지 질이 나쁜 숯을 이용한 건지 불이 금방 꺼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주인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더니 추가 숯 값을 요구하시며 이전에 쓰던 그 말도 안 되는 숯을 다시 내어 주셨다. 숯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계신 건지 돈을 추가해서 그런지 숯의 개수를 넉넉하게 넣어주시면서 그릴에 한가득 숯이 담겨 있었다. 양으로 몰아붙이니 불에 스치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소고기는 이미 다 익었고, 나머지 부속 고기들만 남은 불에 익혀 먹었다.


직화에 구워 나온 고기의 맛을 평가해서 무엇할까?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나온 고기의 육즙이 빠져나가기 전에 소금만 살짝 찍어서 바로 입으로 넣기 바빴다. 한동안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었던 터라 확실히 불향을 입은 소고기의 맛은 남달랐다. 우리 중에 고기 전문가가 구워줘서 맛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딱 먹기 좋았고, 맛이 있었다. 고기가 타버릴까 싶어 씻고 나와 뽀송했던 친구는 땀으로 다시 샤워를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고기를 굽던 친구와 옆에서 도와주던 친구는 질 나쁜 숯에서 튀어나온 불똥에 닿아 팔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고약했던 사람이다. 안전을 전혀 신경 안 쓰고 오래되었거나 젖었다가 마른 숯을 가져다준 그 사람은 울릉도에서 만나 사람 중에 가장 안 좋은 이미지를 안긴 사람이 되었다.

팔에 상처를 입고도 땀을 그렇게 흘리면서도 고기를 구워준 친구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고기는 더 맛있었고, 그와 함께 먹었던 울릉도의 첫 저녁시간은 그렇게 즐거웠다. 즐거운 시간에 맞게 술을 준비했었는데, 준비한 술은 못 마셨다. 내 친구들은 다른 술은 잘 못 먹는 타입이었고, 오로지 소주와 맥주를 즐겨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지고 온 와인은 다시 넣고, 울릉도의 편의점에서 사 온 술을 꺼냈다. 우리 중에 미. 소.(미지근한 소주)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고기를 굽느라 더워서 그랬는지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를 선택했다. 우리는 맥주와 소주를 냉동실에서 꺼내와서 잔에 따라놓고 건배를 외치고 나서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넘기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우연히 차려진 저녁 밥상과 친구들 넘어 보이는 바다에 눈이 머무르게 되었다. 그때서야 우리가 어디서 저녁을 먹는지 알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처음 발코니에 나와서 바다를 봤을 땐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봤던 바다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저 막힘이 없이 바라를 봤던 기회가 많이 없었던 삶이라 그게 신기했었는데, 밤이 되어서야 울릉도 바다의 모습이 다른 곳과 다름이 보였다. 조용하고 잔잔했던 바다와 티 없이 맑었던 하늘. 그리고 가끔 지나던 배만 있었는데, 어느새 어두워진 바다 위로 밝게 불을 켠 배들이 보였다. 하늘에 별들보다 더욱 밝고 빛나던 오징어 배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빛을 내며 조업 중이었다.


멀리 있어서 얼마나 조업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불이 켜진 배들 덕분에 이곳이 울릉도라는 것이 실감 나는 인테리어가 되었다. 불이 켜진 오징에 배들과 낮에 물에서 놀다가 와서 헹궈서 널어둔 옷들이 바람에 바르고 있고, 자신의 일을 마치고 하얗게 변해버린 숯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까지 더해지면서 소주의 목 넘김이 더 달콤해졌다.


한 잔, 두 잔에 달아올랐고, 우리 중에 가장 달콤한 피를 가진 친구를 모기의 미끼로 내어주었지만 슬슬 모기들도 다른 사람의 피를 맛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밖에선 더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들어 온 우리는 안에서 시원한 문명을 누리며 남은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하루가 내려가는 중이다. 모든 게 완벽한 하루가 마감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오징어잡이 배의 불은 더욱 밝아져 가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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