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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06. 2024

나리분지는 다녀오셨나요?

제주도를 가면 한라산을 봐야 하고, 네팔을 가면 안나푸르나를 가야 했다. 산을 올라가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탓에 등산을 전혀 안 하는 삶이지만 산을 보면 또 올라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산을 올라갔다 오면 기분이 좋고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지만 올라가려고 입구까지 가는 게 힘들다. 쉽게 올라가지도 못하니 내가 먼저 가자고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마치 겨울에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면서 출근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가 일어나면 빨리 출근하는 거처럼 말이다.


처음에 이야길 한 것처럼 제주도를 가면 한라산을 가고, 네팔에 갔을 땐 안나푸르나(내 인생에 히말라야라니)를 오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태산이라는 높은 산을 오르기도 했었다. 남미는 기본적으로 산이 많은 곳이라 어딜 가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고, 고산에 도시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높은 곳이라면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산이 있었던 분화구 안쪽으로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나리분지


칼데라 지형이라고 하는 특별한 형태의 지형을 모습을 하고 있는 게 특징인데, 500만 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성인봉이 생기고 그 후에 용암이 빠져나간 자리가 움푹 파인 이후 흙이 쌓이고 땅이 만들어지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지금의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농사도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나래분지라는 이름의 마을이 생겼다. 이 마을을 들어가 보기 전까지만 해도 성인봉을 올라갈 준비하는 마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선 전혀 생각이 바뀌었다. 

분지를 들어오기 전까지 날씨가 매우 좋았고 살짝 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꼬불거리는 도로를 올라와서 보니 구름이 산 위에 걸려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구름이 생겼겠지만 그 구름 덕분에 나리분지가 조금 더 특별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푸르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산엔 나무들이 바람에 소리는 내고 있었다. 같은 금관 악기라 해도 악기마다 소리가 다른 것처럼 나뭇잎의 크기도 다르고 모양이 다르니 소리도 달랐다. 하지만 한 번에 불어오는 바람에 만들어진 소리는 좋은 화음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에도 스친다. 이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는 다르게 가볍고 시원한 바람이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가기 전 블로그나 여행 인스타를 보면서도 나리 분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성인봉을 올라가는 정거장 같은 느낌이었고, 식당이나 카페 사진 몇 개 올라온 게 전부였다. 기대 없던 터라 더 좋았던 건지, 원래 이곳이 좋은 곳인지 주차를 하고 걸어 다니니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마침 우리가 주차를 한 곳이 큰 놀이터가 있는 곳이었는데, 여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애들이 좋아하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심지어 철이 덜 든 어른이 놀아도 재미있는 곳이었다. 미끄럼틀은 그냥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택배 회사에 물건이 지나가는 길처럼 되어 있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촤르르르' 하는 소리가 나는 미끄럼틀이었다. 작은 아이들은 조금 겁을 내는 같이 보였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을 즐겁게 타는 정도였다. 나도 이들과 비슷한 정신연령을 가졌기에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미끄럼틀에 몸을 맡겼다. 


질량이 크면 가속도가 더 붙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나의 무거운 몸은 미끄럼틀을 아주 빠르게 내려갔다. 그와 함께 작은 롤러들은 고통스러운지 '촤르르르' 하는 소리를 더 크게 냈고, 발 뒤꿈치로 속도를 줄이면서 내려왔지만 전력 질주하는 봅슬레이 선수처럼 빠르게 내려왔다. 내가 타는 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친구들도 올라와 타기 시작했는데. 가족 단위로 놀러 온 부모님들이 불편해하실까 봐 한 번씩만 타고 놀이터를 나왔다. 그 외에도 몇 개의 놀기 구가 있었는데, 역시나 아이들이 놀 수 있게 산책 길에 올랐다. 

제주도나 울릉도의 해안은 바람이 많이 분다. 바다 위의 섬이라 특징적으로 바람이 많이 불긴 하는데, 나리분지 안에는 바람이 그렇게 심하게 불진 않았다. 하지만 집들은 나지막이 지어진 집들이 많이 있었고, 특히나 오래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옛집이 보존되어 있어서, 나리분지 생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투막집이라는 이름의 집이었는데, 안에 들어가 집을 살펴보고 나왔다.

194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후 1987년에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여 보수 관리하고 있다. 정면은 4칸 규모이나 큰방과 머릿방만이 투막집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큰방의 좌측에는 부엌을 두었는데 그것은 바닥을 낮게 하여 부뚜막을 설치하고 내굴로 구들장을 놓았다. 부엌을 포함한 3칸의 주위에 우데기를 둘러쳤는데, 우데기는 지붕의 처마 끝 안쪽에 처마를 따라가며 여러 개 가는 기둥을 집 주위에 세우고 출입구만 비워둔 채 새로 이엉을 엮어 가는 기둥에 붙여 만든 외벽이다. 

출입구에는 억새를 발 같이 엮어서 매어 달고 말아 올렸다 내렸다 하여 개폐를 하게 하였다. 몸체의 좌측에는 원래 1M가량 떨어져서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새로 이은 지붕만 있는 외양간이 독립 건물로 배치되어 있었다, 현재는 외양간을 철거하고 부엌의 좌측에 우데기만 두른 헛간을 1칸 연접시켜 정면 칸수수가 모두 4칸이 되었다. 울릉도 개척 당시 주거의 구조와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울릉도 나리동 투막집 설명


다소 투박하고 작은 집이었지만 만약 내가 여기 살았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이곳에 있을 땐 그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여기 살았다면,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이 모습에 반해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나지막한 건물들 뒤로 보이는 산, 그리고 그 산을 감싸 안고 있는 연무들이 점점 내 피부에 내려앉아서 나 또한 감싸 버리는 순간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방문한 그날도 우리를 따라 연무들이 내려앉은 순간이 있었다. 물론 잠시 뒤 해가 내려오면서 안개들이 걷혔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둔 나리분지의 모습을 보면서도 다시금 나래분지의 사계절을 생각해 본다. 무더운 여름엔 여름 나름의 느낌이 들지만 겨울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나리분지를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면서 또 다른 절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면 볼수록 색다른 느낌의 나리분지 체험 할 수 있어 보여 겨울에 다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이곳이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나리분지 안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울릉도에 살고 있는 총인구가 9000명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러면 나리분지는 조금 더 인구가 적으니 고요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섬이 아닌 곳으로 쉽게 나올 수 있지만 지금도 여기엔 여전히 삶을 영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방식이고 삶이 있는 것이다.


점점 나리분지에 관광객들이 늘면서 소소하게 물건을 파는 상가들 몇이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마치 미국의 긴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한산한 식당처럼 할 일은 하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지 사람들이 이곳까지 방문해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작은 카페나 소품 가게들도 있고, 음료수나 물을 파는 매점 같은 슈퍼도 있었다. 진짜 휴게소 같은 느낌이다.


우리도 열려있는 상가를 방문해 호박 식혜를 마셨는데, 맛이 좋았다. 울릉도를 소재로 한 노래에서 호박엿이 유명하다곤 알고 있었는데, 식혜까지 맛이 있는지 몰랐다. (아직 미공개) 나중엔 호박 막걸리를 사게 되는데, 그 이야기도 잘 담아낼 예정이다. 


'운전을 열심히 해 준 우리 친구 너무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나리분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모처럼 맞이한 여유로운 시간이 나리분지라서 배가 된 기분이 든다. 고요하고 차분한 마을에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도 이따금 그곳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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