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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12. 2024

독도를 밟는다는 행운

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k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2.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삼팔
독도는 우리 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
십구만 평방미터 799에 805
독도는 우리 땅

4. 지증왕 십삼 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조선땅
독도는 우리 땅

5.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독도는 우리 땅


까마득히 먼 곳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나이가 40이 되어가도록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했던 땅이었다. 민족의식은 있으니 행하지 못했고, 우리나라 땅이라고 외국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기만 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의지가 없었던 건지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크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쉽사리 울릉도를 가볼 생각도 못했었고, 독도를 입도하려는 생각은 전혀 해 볼 수 없었다. 한 때,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을 하며 다시 나만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었다. '무한도전'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외국인 한 명이 한 글자를 부르는 것으로 편집하여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애국의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았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노랫말은 무한도전에서 편집해서 나 온노래의 원곡 가사이다. 사실 방송 이전에 이 노래는 우리가 익히 알고 부르던 노래이고 나는 그 가사를 인용한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검색해서 적어둔 가사인데, 내가 학창 시절 불렀던 노랫말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1절에 87K는 87Km라는 말인데 거리를 재는 ‘리’라는 단위를 Km로 바꾸어 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소 법이 바뀌면서 독도가 받은 새 주소가 노랫말에 들어가 있다. 비록 짧은 단어의 변화지만 시대에 변화에 맞춘다는 점에서 노래가 생동감 있어 보이고 시대와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 좋다.


독도를 방문하겠다는 당찬 계획은 순전히 즉흥에서 나왔다. 원래 울릉도를 들어오기 전에 독도를 가는 배편을 예약했어야 했는데, 워낙 무계획성 여행이라 예약할 생각도 못했었다, 울릉도를 들어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미 매진이 되어 버린 표를 살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 남은 여행기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봤고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당일에 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일표는 취소 한 사람들의 표를 사는 것이라 수량이 불투명하고, 만약 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표를 몇 장이나 살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르면 물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저동항에 있는 매표소로 간 것이 우리에겐 큰 행운이었다.


아침에 방문했던 사람들도 너울이 심해서 독도 입도는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던데, 운이 좋게 우린 표도 구했고 독도를 들어가는 더 큰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독도를 들어가는 것이 행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울릉도의 날씨가 좋다고 해서 그날 독도를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워낙의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 인근까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는 경우가 있었기에 입도를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입도의 시간은 짧았다. 우리에게 20분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성이 있었다. 다만 통제구역이 있었는데, 바로 앞까지는 갈 수 있게 길은 열려 있었다. 울렁이는 물결 위로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곳에 표지석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간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 그곳도 자리가 나기 시작했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 무리해서 달려갈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달려가는 대신 천천히 바다를 둘러보며 독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는 것을 권한다. 독도는 바위섬으로 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길을 낸 곳이 아니라면 오르기도 쉽지 않고, 서 있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그나마 배가 드나드는 일정한 장소는 도로처럼 포장도 되어 있어 오가기 어려움은 없었다.


모든 게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표를 사는 타이밍도 좋았다. 각각의 상황이 맞아 들어가니 최고의 기회가 되었다. 내 평생에 독도를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싶어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보기도 하고 내가 서 있는 반대쪽의 독도를 한참 보고 서 있기도 했다. 망망대해에 작은 섬하나가 외롭게 서 있고 그 위에 내가 서 있는 게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누군가가 하늘에서 나를 찍어 확대한다면 동해에 넓은 바다에서 나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표지석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오니 독도 수비대 분들이 계셨다. 사진 찍는 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독도의 유일한 도로 가장 안쪽에 출입이 제한되어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고 서 있는 독도 수비대 분들이 환하게 웃고 계셨지만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우리가 머무르는 2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분들은 근무하시는 분들 몇만 이곳을 지키고 서 있을 것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동라 가버린다. 적막하고 고요해서 파도 소리만 들리 이곳에서 그들은 영토 수호의 임무를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수영장에서 만난 해군 출신의 안사장님은 바다에서 근무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하셨다. 바다의 규칙적인 파도소리와 불규칙한 일렁임, 옆에 아무도 없다는 현실과 근무일의 연속은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게 만들어 버린다고 하셨다. 이곳도 마땅히 그러하리라. 다행스럽게도 독도의 단단함이 바닥이 되어 내가 물 위에 실려 떠다닐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을 위안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영토의 동쪽 끝은 염려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아, 그리고 이곳엔 또 다른 인기인이 있다. 아니 인기'인'은 아니고 인기'견' 한 마리가 있다. 독도를 제집으로 살아가는 독도 수호견이라고 부르는 개 두 마리의 이야기다. '우리', '나라'는 한국 삽살개협회에서 2년마다 독도로 파견을 보내는 개들 중 10번째 파견된 개의 이름이다. 삽살은 우리나라에서 귀신이나 살을 쫓아낸다고 해서 우리말 삽살이름이 붙은 개로써 한때 일본의 전쟁물자 보급에 군복모피로 사용되면서 전국에 있는 삽살개들이 멸종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1985년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금의 삽살개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내가 독도를 방문했을 당시의 기준으로 털이 많이 없어 삽살개처럼 보이지 않았고, 이름도 몰라서 그냥 독도 수비 견으로 부르기만 했었다. 검색을 할 수 있었지만 사진을 찍고 눈으로 담아내고 있던 터라 여유가 없었다. 독도를 다녀와 곧장 검색을 통해 이들이 '우리'와 '나라'라는 이름을 가진 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이름이라도 불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뭐 사실 내가 부른다고 쪼르륵 달려와 줄리 없겠지만 말이다.

역시나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오후에 떠나 독도 일정이라 해넘이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넘어가는 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독도에 걸려있는 해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동해에서 해 뜨는 것을 못 봤다면 해넘이를 보는 것도 나름의 운치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승선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한 장이라도 사진을 더 찍으려는 사람, 독도의 표지석이나 표지판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 단체사진을 많이 찍었다며 독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포인트마다 붐볐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처음보다 달라진 풍경에 다들 바삐 셔터를 눌렀다. 우리와 같이 들어온 사람 중에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통신신호가 잘 잡히는지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사람도 있었다.


끝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의미 있다고 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독도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요량으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왼쪽에 동섬, 오른쪽에 서섬이 오게 자리 잡고 고개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가끔 셔터를 눌러 사진도 찍고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내 사진도 찍어줬다.


한창 분위기에 빠져들려고 할 때, 배에서 승선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움직였고 나도 따라 배에 올랐다. 배에 올라타면서도 자꾸 고개가 뒤로 돌아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줄 서서 차례로 올랐다. 우리가 탔던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방송으로 아직 승선하지 않은 사람들을 불렀다.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던 한 무리들이 배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면서도 어찌나 사진을 찍어대는지 '어딜 가도 꼭 저런 사람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딱 이 한 부분을 제외하곤 아주 의미 있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독도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울릉도를 여행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물론 울릉도는 울릉도 자체로 매력이 있는 곳이지만 독도를 더 좋아하는 나는 편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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