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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19. 2024

독도 막걸리를 아세요?

독도를 다녀와선 독도 막걸리지

독도는 다녀왔으니 집으로 피신


독도를 갈 모양이 아니었으니 울릉도 깊숙한 곳까지 가 볼 생각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오전엔 생각보다 많은 곳을 다니기 바빴고 그만큼 많이 움직였다. 동선 신경 안 쓰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몇 번이나 지나면서 본 곳도 있었다. 그래도 네 명이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신이 났다. 아침엔 도나스(도넛)도 먹고 나리 분지도 다녀왔다. 바다를 보기 위해 해안 도로를 달려 바다를 구경하기도 했다. 바다만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속까지 궁금해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경험도 했다. 


흔히 말하는 새벽 첫차를 타는 느낌이다. 아침까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더 이상 가게들도 문을 열지 않는 시간이 되면 24시간 불을 켜둔 국밥집에 들어간다. 음식을 먹을 만큼 먹었고,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있다. 그러니 술국하나면 충분했다. 혹여나 인원이 더 있다면 한 접시의 고기도 좋다. 마주 앉은 상 위로 뜨거운 김이 나는 국이 올라오면 다시 시작했고, 해뜨기 전 우린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해는 뜨지 않은 새벽 무렵 대중교통이 시작되기 전 아침 풍경은 고요하고 활기차 보인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고요해 보이지만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도 새벽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이사를 했고, 숙소가 있는 곳에서 반대편으로 이동을 하느라 하루가 다 지나버렸다. 거기에다가 대한민국 동쪽 가장 끝에 있는 독도를 다녀오느라 모아두었던 기를 다 써버렸다.


오랜 스케줄을 마치고 온 연예인이 이런 기분이 이랬을까? 출장을 하루에 두 곳을 다녀온 회사원 느낌이랄까? 뭔가 뿌듯하면서도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지치는 느낌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나름의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다. 나이가 같은 친구라 공통된 시절의 이야기부터 현재의 상황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말을 한다. 네 명이나 되니 당연히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평소에 자주 보는 친구들이었다면 할 이야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기엔 우리가 만난 시간이 주기적이지 못했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루는 길었지만 저녁이 되어 하루를 돌아보니 찰나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훌쩍 지나버린 시간이었다. 독도를 다녀오는 배를 타고 내리니 울릉도 저동항에는 어두움이 내려앉은 뒤였다. 


저동항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독도 막걸리


독도가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섬이 내 이야길 들을 수 없으니 이야길 꺼내보자면, 독도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주인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독도의 주인은 언제나 대한민국이니, 두 말하면 입 아픈 그런 이야긴 아니다. 마트나 상점이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자판기도 없다. 


생각해 봤는데, 편의점이 있으면 웃기기도 할 것 같다. 암튼 아무것도 없는 독도는 독도의 이름을 가진 어떤 것도 만들어 내거나 팔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울릉도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독도를 다녀오는 길에서부터 우리(손님)를 기다리는 식당주인, 울릉도 편의점에서만 팔고 있는 독도 소주와 막걸리가 그 대표적인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독도는 아니 지먼 다행스럽게도 맛볼 있는 제품이 있으니 독도는 울릉도가 있어서 다행이다.  


편의점에 들러 어제 마시던 독도 소주와 독도 막걸리는 사 가지고 돌아왔다. 남은 돼지고기를 굽고 김치를 꺼냈다. 즉석밥이 데워지고, 시원한 수박도 대기하고 있었다. 캠핑장 같은 느낌이 들도록 꾸며진 등나무 아래 테이블에서 우린 저녁을 먹었다. 심지어 하루종일 같이 있었지만 여전히 남은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참. 저동항 옆에 있던 울라관광센터에서는 울릉도 맥주를 팔고 있었다. 요즘은 브루잉이 많아 쉽게 수제 맥주집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조금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나 규모 있게 운영하는 맥주 브루잉은 편의점에서 그 맥주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 맥주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맛의 맥주였다. 개인적으로 매일 찾아 마실 수 있는 맥주 맛은 아니라 따로 사 본 적은 없지만 울릉도에서 시원하게 한잔 맛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심지어 맛있기도 했다. 내 입맛엔 조금 달다고 느껴졌을 뿐 전혀 맛이 없진 않았다.


초록 잔디가 가득한 정원에서 숯불향을 맡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같이 여행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별로 많이 먹진 않았는데(그럴 리 없다) 배가 불렀고,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전혀 그럴 리 없다)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하루는 길었지만 순식간에 지났다. 오늘도 기가 막힌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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