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쳤다. 식탁에서 과일을 먹으며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확인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요즘 무슨 공부를 해?”
늘 분주한 나를 보며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나 보다.
“응. 글쓰기 공부하는데 너무 어려워.”
“그래? 그럼 내가 알려줄까?”
“응 좋아. 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알려주는 글쓰기 비법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답했다.
“일단 10칸 공책을 사.”
“그래? 그리고 어떻게 해?” 열 칸 공책을 사라는 대답에 속으로 무슨 말인지 몰라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선생님이 알려주셨는데 동그라미(이응)는 찌그러지지 않게 이렇게 동그랗게 써야 해.” 아이는 손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설명했다.
“아 잠시만 기다려봐.”
책장에 있는 본인의 열 칸 공책을 꺼내 내 옆으로 와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네모 칸 보이지. 여기에 글씨를 꽉 차게 써야 해. 그리고 이렇게 세로로 길게 쓰는 거 있잖아.(모음) 이거는 위에를 조금 꺾고 길게 쓰라고 하셨어. 꼭 꺾어야 해.”
“아하 그렇구나. 고마워.”
가만히 설명을 들어보니 글쓰기가 아니라 글씨 쓰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진지하게 설명을 하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사실이다. 첫째 아이는 나와 다르게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 나는 악필이라 아이 학교에 제출하는 문서에 글씨를 쓸 때도 힘들다. 다시 쓴 적도 자주 있었다. 아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글씨 예쁘게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나는 고맙다고 앞으로 글씨를 예쁘게 써보겠다고 했다.
글씨를 잘 쓰는 첫째 아이는 글도 잘 쓴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와 책 읽기를 좋아했다. 나와 신랑이 매일 책을 읽어주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책 읽는 시간을 기다렸다. 한글을 늦게 떼서 스스로 읽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이제 잘 읽는다. 아이가 책을 집중하여 보며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고 나서 혼자 읽는 책 읽기도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집에 티브이가 없어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활동이 만들기와 책 읽기다. 나와 신랑에게 편지도 자주 써주고, 시 쓰는 것도 좋아한다. 간단한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어했다.
나는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올해 처음으로 백일장을 신청했다. 백일장은 나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떨리고 기대되었다. 신랑과 아이 둘을 데리고 백일장 장소로 갔다. 막내를 제외한 우리 셋이 백일장에 도전했다.
첫째는 ‘사과’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주제를 고르고 잠시 생각하더니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먹는 사과에 대한 감사함과 애정이 묻어나는 시였다. 나는 매일 생각 없이 사과를 먹었는데 아이는 달랐다. 사과를 먹으며 느끼고 관찰한 아이의 시선과 감정이 잘 담겼다. 평소 소소한 일에도 감사하며 생각이 깊은 일상이 글로 나타나는 것 같아 대견했다.
백일장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 주려고 참가한 것인데 우수상을 받았다. 우리 셋 중에 혼자 상을 받았다. 구 단위의 작은 백일장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이라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아이는 정말 기뻐하면서도 부끄럽다고 상장은 학교로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학교로 보내달라고 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아이가 나보다 글씨도 글도 잘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엔 진짜 글쓰기 비법을 좀 알려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