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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Jun 28. 2021

이준석과 박성민의 차이

준비된 세계관과 그렇지 않은 세계관

빌런 ‘블랙 맘바’로부터 디지털 세계를 지키는 4인의 멤버들.


2020년 말 데뷔한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이다. 이처럼 ‘OO 유니버스’ 혹은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다. 세계관 구축은 단순히 기존의 컨셉, 스토리, 톤 앤 매너를 확장시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틀 안에서 각각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최근 떠오르는 청년 정치인 이준석에게도 세계관이 존재한다. 그가 내세우는 세계관은 ‘공정한 경쟁’이다. 알아주는 철도 덕후인 그는 KTX에 핸드폰 충전용 콘센트가 생긴 것을 보며 “SRT라는 경쟁사가 생기니 드디어 KTX가 일을 하는구나”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린적이 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경쟁하면 사회의 총효용은 자연스레 증가한다.] 이준석은 이러한 세계관을 꾸준히 밀어왔다.


그러면 어떻게 이준석의 세계관이 일명 ‘이대남’들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첫째로 그는 본인의 세계관을 자신의 정치인생으로 증명했다. ‘0선 의원’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방송에 출연해서 얼굴을 비추었고, 떨어질 것이 뻔한 험지에 출마하여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그는 할당제의 불공정한 수혜자가 아니었고, 자기 자신의 말과 삶이 다른 내로남불의 인물도 아니었다.


둘째로 그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세계관이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었다. 박원익, 조윤호 작가가 집필한 ⟪공정하지 않다⟫에서는 20대가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00미터를 10초 안에 돌파해야 다음 경기에 진출할 수 있는 예선전이 있다고 하자. (중략)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해지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도, 어깨에 짊어진 짐을 덜어주지도 않은 채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 중 더 힘든 사람은 기록과 무관하게 다음 경기에 진출한다’고 정한다면 함께 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무한경쟁사회에 던져진 청년들이 할당제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 1000명이 화장실 앞에 바지춤을 부여잡고 줄을 서있다. 하지만 화장실은 단 10칸뿐. 이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화장실 개수를 늘리는 것일까? 아니면 5칸을 의무적으로 여성에게 할당하는 것일까? 청년들은 정부가 화장실 개수를 늘려주지 않을 거면 차라리 공정한 경쟁이라도 보장하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셋째로 이준석의 세계관에는 빌런이 존재한다. 바로 기성세대 엘리트들이다. 보수 정치인들은 자유시장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외치지만 정작 본인들은 엑셀도 쓸 줄 모르면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진보 정치인들은 평등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의 자녀에게는 부동산과 고학력을 물려주고 있다. 모름지기 사람들은 같은 것을 좋아할 때보다 같은 것을 싫어할 때 더 쉽게 뭉치는 법. 기성세대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이준석을 통해 20대는 대리만족을 느끼고 지지를 보낸다.


반면에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기용된 박성민을 보자. 이준석과 달리 박성민에게는 빈약한 세계관뿐이다. 첫째로 박성민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최대 업적인 ‘최연소 최고위원’과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은 두 중년 남성 정치인의 의지로 이루어졌다. 본인의 세계관과 정치인생이 벌써 모순을 일으킨다.


둘째로 박성민은 단지 청년이라는 이유로 기용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준석과 박성민 사이에는 청년이라는 공통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책상과 의자가 둘 다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같은 가구가 아니듯이, 청년을 높은 자리에 세운다고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는 생각은 몹시 황당하다. 더군다나 지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청년 지지율은 최악이었다. 청년 최고위원으로서 결과에 책임을 묻기는커녕 1급 비서관으로 발탁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처사인지 의문이다.


셋째로 박성민에게는 매력적인 빌런이 없다. 박성민의 세계관에서 빌런은 아이돌의 간호사 복장과 리얼돌이다. 불평등이 문제라면 그 원인이 되는 기득권을 들이박는 패기라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악당으로 지목한 것이 간호사 복장과 리얼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가 아닌 동네 초등학생이랑 싸우는 꼴이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관을 만들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저스티스 리그’의 세계관 구축에 실패한 조스 웨던은 많은 비판을 받고, 결국 DC에서는 전임 감독인 스나이더 컷을 따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박성민을 기용하여 억지 서사를 부여한 이철희 정무수석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무한경쟁사회에 태어난 청년들에게 최종 빌런은 불평등과 불공정이다. 청년들은 나이만 청년이고 기성 세대에겐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대표를 바라지 않는다. 만약 우리 사회의 기득권과 엘리트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대다수 청년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진보 진영에서 이준석에 대항할 유일한 방법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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