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청년들의 여가부 폐지 요구는 정당하다
최근 윤석열 후보가 공식적으로 여가부 폐지를 공론화했다. 이수정과 신지예 등을 영입한 그의 진정성을 신뢰할 이유는 없지만, 이 의제 자체가 공론화된 것만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제기된 여가부 폐지론은 최근 수도권 총여 폐지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다. 특정 성별만을 대변하는 정부조직이나 학생회가 존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상 폐지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여가부 폐지를 계기로 성별·연령을 가리지 않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혹자는 이 사안을 마치 일부 이대남의 관심사인 것처럼 규정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여가부 폐지 여론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지난해 11월 당시의 여론조사에서는 전 연령층이 62.6∼70.6%의 비율로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다.
지금까지 이 쟁점이 주류정당의 공식의제로 채택된 적이 없어서 그렇지, 이 이슈가 기름처럼 번진다면 민심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우리나라 정치문화 특성상 여가부는 정말로 폐지될 수 있다.
여성계와 페미니즘 우호 매체들도 그 점을 우려하기 때문에 '여가부 폐지 이슈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분열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눈 가리고 아웅 식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
한편 이 쟁점은 기술관료주의와 대중주의가 대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사안에 대한 가장 기술관료다운 반응은 '여가부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개편하면 되지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등의 진부한 이야기이다. 이런 판에 박은 반응의 근본적 문제는 과반을 넘는 대중여론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운동의 이른바 '성주류화 전략'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여가부는 정부조직 내에서 여성운동을 이념적으로 후원하며 여러 사업을 통해 여성운동을 재생산하는 물적 토대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여가부 폐지론은 단순히 여가부라는 조직의 정책실패 및 무능만이 아니라 그것이 확대재생산하는 '운동'과 '이념'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외면한 채 '조직개편'이니 '여성문제 해결'을 운운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특히 이는 '여성문제 해결은 페미니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부당전제에 기초한 허구적 주장이다.
윤석열의 진심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민주진보 진영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여성문제들은 분명 존재한다. 저임금에 묶여 있는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무고에 대한 안전장치 강화와 더불어) 여성대상 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단호한 액션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해결과 '페미니즘'이라는 모순투성이의 이념/이즘에 대한 지지 문제는 단호하게 분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진보 진영 내에서도 페미니즘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공개비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하다 못해 중국공산당도 마오쩌둥의 ‘공칠과삼’을 거론하는 마당에 대한민국 여당이 그 정도 내부비판과 자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기형적인 일이다. 공당의 정치인들이 적어도 ‘메갈짓’을 ‘메갈짓’이라고 일갈한 배우 유아인보다 용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의 타성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면 20-30대 남성의 지지는 얻지만 정확히 동일한 비율로 20-30대 여성의 지지는 잃는다는 ‘두려움’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허구적 딜레마에 불과하다.
시대변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한 페미니즘 비판은 오히려 다수 청년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선례가 수도권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다. 다시 복기하자면, 수도권에서는 경희대를 마지막으로 학생투표로 모든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수도권 인문사회캠은 이대녀가 이대남보다 수적으로 다수임에도 특정성별만을 대변하는 학생회조직이 존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심지어 경희대에서는 여학생의 투표만으로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총여 폐지론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가부 폐지론과 동일한 명분과 논리구조를 지닌다. 어디든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게 도움을 줘야 하지 특정성별만을 대변하는 기구를 존속시키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가부 폐지론과 페미니즘 비판을 애써 분리해서도 안 된다. 그 말은 수도권 캠퍼스에서 진행된 총여학생회 폐지 운동이 페미니즘 비판과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한 주장이다.
페미니즘 이념의 시대착오성에 대한 비판이 청년들의 주류여론을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환호하는 여론을 젠더갈등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이대남만의 여론이라고 애써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80년대 대학가에서 번진 학생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라고 애써 폄하한 군부독재 옹호 어르신들이랑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사회세력도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여성가족부 존치론을 수세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외면하고 싶어도 이 사안은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다. 이미 엘리트 여성계와 관료들의 카르텔이 되어버린 여성가족부를 과감하게 혁파하고 이를 ‘진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사회경제적 약자·취약계층의 외연을 더욱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