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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23. 2024

움켜진 손을 펼 때, 나누는 삶

남편의 투병 이후 경제 생활을 잠시 쉬던 우리 가족은 내가 가장이 되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조금 더 쉬고 싶어 했지만 수입이 없는 삶이 지속되는 게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수입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살고 아이들을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이게 바로 가장의 무게구나.


강릉으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 멀리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이런 시간이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에게 또 다시 없을 것만 같았다.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 준비를 하고, 지역에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여행 갈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했다. 팽팽한 감정선을 달리다가 결국 전주와 군산으로 국내 여행을 다녀오는 걸로 타협점을 찾았었다.


지난 8년간 남편은 가족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고, 육아와 살림도 함께 하며 밤낮 부지런히 일했다. 남편이 이것저것 다 하는 성격이니 괜히 내가 했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잔소리하면 기분만 상하게 되니 점점 손을 놓을 때가 많았다.


남편이 투병을 하게 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린 두 아이들을 등하원하기 위해 운전을 시작하고, 밥을 해먹이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못하는 일이란 없구나. 닥치면 다 할 수 있구나. 아무튼 그 이후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삶을 살아왔다.


한 달 매출이 30만 원이 안 될 때는 정말 현타가 왔고,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불투명할 땐 정말 간절해졌다. 제안서도 수십 번 쓰고 여기저기 찾아가서 제품 입고를 부탁하고, 연락하고. 간절하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매출이 생겨나고 좋은 기회들도 찾아왔다. 사실 나는 워커홀릭도 아니고 그렇게 간절하게 사는 성격도 아닌데, 간절해지니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가끔은 그 간절함이 나는 버거웠다. 조금 덜 간절해지고 싶었다. 간절함이 일 추진의 원동력이 되긴 하지만, 지나친 간절함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려놓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부지런히 하다 보면 기회는 온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지난 해 열심히 달렸더니 성적표가 달라졌다. 너무너무 감사했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얼만큼 더 벌어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최선을 다해야 더 많이 벌 수 있는 걸까,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할까. 과연 끝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결론은, 더 많이 벌려고만 하기보다 내가 가진 걸 나누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


더 가지려고만 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걸 알았다. 조금 더 풍족해지긴 하겠지만, 훨씬 더 행복할 거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나누는 삶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 것만 챙기던 사람이 갑자기 나누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어떤 걸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만드는 컬러링북을 나누기로 했다. 지역아동센터나 요양원 등 어디에 기증할까 고민하다 시에서 하는 드림스타트에 기증하기로 했다. 시에서 취약 계층 아동들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알아서 필요한 아이들에게 잘 나눠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증하기로 마음을 먹고 연락을 했더니 기증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약간 당황한 듯이 느껴졌고, 왜 기부하는지 물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잠시 고민도 들었지만. 결국 기증하러 갔을 땐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기증해쥐서 감사하다고, 필요한 곳에 잘 쓰겠다고 해주셔서 너무 마음이 뿌듯했다.


더 가지고, 움켜쥐려 할수록 마음이 비좁아졌지만, 움켜진 손을 펴고 나누려고 할 때 마음이 넓어진다는 걸 았다. 남편이 투병할 때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도움도 주시고. 세상엔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걸 느껴서 남은 평생 되돌려주고 갚으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다짐이 흐려졌다.


이제 첫 시작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는 내가 가진 걸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실천해보려고 한다. 그 삶이 어떨지는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해지는 걸 보니 틀린 방향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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