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이 영화는 인간적인 영화다. 판타지 요소도 없고 크게 드라마틱한 연출도 없다. 샤이론의,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너무 잘 표현한 작품이며 명대사와 재밌는 연출을 사이사이에 쏙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 글은 다소 뒤죽박죽일 수 있으니, 유의해서 읽기를 바란다. 이번 리뷰는 큰 틀 속에서 이야기의 진행과 이를 진행시키는 방식, 카메라의 효과에 대한 글이다.
영화는 크게 세 타임라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샤이론의 어릴 적,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된 후. 각 챕터는 i. Little, ii. Chiron, iii. Black으로 소개된다. 셋 모두 주인공을 지칭하는 말들이지만 그 당시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보여주는 이름들이다.
Little은 어릴 적 또래들이 자기에게 붙인 별명이다. 왜소한 모습과 소심한 성격 때문에 따돌림을 받고 어디에도 쉽게 끼지 못한다. 유일하게 케빈만이 그의 친구였다. 이 시절 따돌림을 당하다가 후안과 테레사와 처음 만나게 된다.
Chiron은 주인공의 본명이다. 키가 훌쩍 커버린 그는 더 이상 'Little'하지 않다. 그의 또래들도 그를 더 이상 Little이라 부르지 않고 샤이론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의 친구이자 첫사랑인 케빈은 그를 Black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구타를 당하고, 복수의 방법으로 폭력을 택한 샤이론은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Black은 방금 말한 것처럼, 케빈이 그를 부르던 이름이다. 그는 성인이 되었고, 감옥에서의 인연을 통해 출소 후 마약 딜러의 생활을 한다. 마치 이전 그가 존경하던 후안과 같은 모습이다.
이와 같은 세 개의 챕터 구성을 통하여 영화 내 시간 흐름을 잘 정리해준다. 중간중간의 스토리를 과감히 제거하고 시간을 건너뛰며 이야기를 전달하면 사건들의 공백이 생겨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꽤나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다. 각 챕터별 3,40분 남짓한 시간 내에 주인공의 성격과 주변 환경을 잘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갑작스럽지 않고 무언가 당연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한 편으론 슬프기도 하다. 시작부터 우울한 주인공의 삶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은 디즈니에서 찾자.
문라이트는 샤이론의 일생(이라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만)을 보여주는 영화이자, 자신을 찾는 영화이다. 앞서 챕터의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자. 첫 둘의 제목은 타인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또래들이 자기를 부르던 Little과 Chiron. 하지만 Black은 주인공 스스로 자신을 정의 내린 이름이다. 물론 케빈이 붙여준 이름이지만 그가 잡혀간 이후로 둘은 오랫동안 서로 못 봤으니, 샤이론 스스로를 블랙이라 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청소년기까지만 해도 남들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았다. 남들에게 쫓기는 어릴 적, 구타당하던 청소년기. 그런 그의 곁에는 마약에 찌들어가는 엄마가 있었고, 그녀마저 그를 때로는 욕하기도 하고 막대하기도 하였다. 이런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버젓이 자신이 마약거래를 하는 딜러 중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게 되어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샤이론은 과연 자기 자신을 찾은 걸까? 아니다! 애석하게도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의 과거는 간단하게 말해, 힘이 있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다 나은 삶을 살았음을 그에게 각인시키는 시기였다. 왜소하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맞고, 무시당했음이 무의식 속에 박힌 것이다. 그를 보살펴주던 후안마저 마약 딜러 중 나름 힘이 있는 사람이었고, 좋은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그를 보며 어린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힘이 있으면, 권력이 있으면 편하다-일 것이다. 비관적이라고? 하지만 이게 현실인걸! 청소년기가 되어서 주인공은 구타를 당하고 상담사가 그에게 고소할 것을 조언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케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에게 고소라는 수단은 힘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결국 고소를 하여도 힘이 없는 건 여전하여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힘, 폭력으로 복수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래야만 그가 진정으로 무시를 당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마약 딜러가 되었다. 자신의 엄마가 어떻게 됐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는 마약 거래를 한다. 엄마에 대한 복수일까, 후안의 영향일까.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짓궂은 농담을 하면서 자신의 높은 위치를 확인하려고 한다. 차도 멋진 걸 뽑고, 금이빨을 차고 음악도 갱스터 음악을 틀어놓는다. 더 이상 그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사람은 없다. 전과 다르게 몸도 좋다. 그에게 없던 힘과 권력, 그의 따돌림의 원인이라고 생각되었던 두 가지를 모두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어색하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그가 어른이 되어 진정으로 웃을 때는 첫사랑이자 그를 있던 그대로 알아봐 주던 케빈이랑 있을 때였다.
하지만 웃긴 것은 사실 케빈도 샤이론과 같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남들이 기대하는, 남들이 하라는 것만 하는 삶을 살았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그랬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는 이제 아빠가 되었고, 직장이 생겼으며 걱정이 줄어들었다는 것.
슬프게 이 영화에서는 성공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 현실에 마주한 우리의 모습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영화 내 이야기는 충분히 다룬 듯싶다. 그럼 항상 하던 조금 다른 이야기,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쉽게도(?) 눈에 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많지 않지만 촬영 방법은 눈에 조금 들어왔다.
영화에서는, 특히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다면 일단 예쁜 바닷가를 보여준다. 이 곳은 멋진 곳!이라고 뇌리에 박아버린다. 마이애미가 아니더라도 풍경을 보여주거나 전체적인 뷰를 보여주는 넓은 샷들을 한 두 군데는 꼭 넣는다. 드론까지는 아니어도 지미집 정도는 너무 당연하게도 사용한 샷들이 있다.
하지만 문라이트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이 철저히 카메라를 낮추어 마치 사건 옆에서 내가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3인칭의 시점을 갖는다. 이런 방법은 관찰자(관객)와 등장인물 간의 벽을 줄여준다. 인물에 더 몰입하고 이입할 수 있는 설정인 것이다. 만약 저 높이 있는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면 3인칭이 아니라 전지적 시점이 되어 사건을 그저 방관하는 구경꾼이 될 것이다. "와, 진짜 그랬어?"랑 "아 그랬네~"의 차이랄까.
너무 흔들리는 카메라에 어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몰입이 되는 것이다. 인물의 표정과 눈빛을 가까이서 원샷으로 잡아주고, 그들은 가끔 카메라를 통하여 우리를 쳐다보기도 한다. 마치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만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야"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