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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아 Oct 07. 2020

건축학과 2학년 학생을 위한 디지털 모델링과 BIM


건축학과 2학년 학생을 위한 디지털 모델링과 BIM (수업용: 돈 되는 이야기, 산업화 이야기 빼고 당장 모델링의 취지만)


설계스튜디오는 이미 코로나 만큼이나 여러분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 좀 한다고 생각했고 학원에서 시간을 투자 한 만큼 성적도 나왔는데 설계에선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설계 과제에 매달리고 '김모 교수님의 디지털모델링' 같은 기타 과목에는 남는 시간을 겨우 할애하면서 살고 있지만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다. 전공 선택을 잘못 한 것일까? 그 와중에 일선의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건축은 건축에 정말 빠져야만 하는 거야!” 아니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은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 건축은 왜 특히 빠져야 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연봉도 많지 않은데 맨날 야근한다며? 왜 우리만 5년제인가? 생명을 다루는 의대생은 90%이상 국시에 합격하는데 건축사 시험은 왜 합격률이 그 모양인가? 머리 속에선 이런 짜증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설계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나> 이것은 우주의 정기를 받아들이는 안테나입니다.

튜터>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굴뚝이다.


나> Alt. A는 … Alt. B는 …. Alt. C는 …

튜터> 난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튜터> 왜 각도를 그렇게 틀었나?

나>  … (멋있어서 그냥 틀어봤습니다.)


형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더해져, “다음 시간까지 Alt. 세 개”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제례의식에 따라 이미 주연은 정해져 있는데 들러리를 세우는 연출 능력, 그리고 정량화, 객관화 불가능한 그 ‘느낌’을 갑에게 설파하기 위한 강력한 신공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정답이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설계는 왜 정답이 없는가? 유사이래 완성이 되어서 끝나는 설계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마감이 되어야 끝나는 것이다. 컴퓨터를 잘 쓰면 일이 빨라질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케치업이나 포토샵과 같은 도구는 학원이며 유튜브로 익혀서 너무 잘 다룬다. 그래서 어떤 날은 박스 몇 개 겹쳐서 이리 비틀고 저리 찢어서 가져갔는데 튜터 선생님은 “건축이 그렇게 쉬운 건줄 알어?”라며 혼을 내신다. 컴퓨터가 설계 점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로 설계를 어떻게 한다는 건가? 컴퓨터는 위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디지털 모델은 왜 만드는가?


설계자의 머리 속에는 가상의(imaginary) 건축물이 존재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관념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인 건축물의 모습으로 진화한다.  설계가 진행되면서 <가상 건축물>과 <표현물>이 동시 진화하는데, 표현물은 스케치, 목업 모델, 디지털 3D 모델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표현물을 평가하면서 다시 수정된 혹은 구체화된 가상건축물이 머리 속에 자리잡는다. 이러한 seeing-imaging-seeing의 사이클은 개인 건축가의 설계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다. 운동을 처음 배우는 이에게 여러 동작을 분절해서 익히게 하지만, 숙달된 선수는 하나의 연속동작 혹은 동시동작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숙달된 설계자에게 이러한 사이클은 전광석화처럼 일어나는 이벤트로서 결국 표현물과의 끊임없는 암묵적인 대화를 통해서 설계안이 발전되어 나간다.


대부분의 실무 건축 프로젝트는 이러한 개인적 설계 행위로 해결되지 않는다. 여러 설계자의 협업은 물론, 구조, 설비,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한 지극히 사회적인 프로세스이다.


BIM은 이러한 과정에서 표현물들을 통합하고, 프로세스를 코디네이트 하는 역할을 한다. 전체는 진화하는 부분 모델들의 통합 모델이며, 부분들의 변경을 반영한다. 역으로 전체 모델에 대한 평가와 변경의 요구는 부분들의 변경으로 파급된다. BIM이 도면을 만드는 작업이나 3차원 모델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가상 건축물을 만드는 작업임을 이해해야 BIM 설계에 제대로 접근할수 있다. 말단의 모델링 하나하나는 뻘짓이언정 영광은 통합 모델에 있다. 오늘 수업에서의 지루한 모델링이 평생의 일이 되지말길 바란다. 디지털 모델링의 수단이 정교한 수작업이든 제너러티브 알고리즘이든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든, 만들어진 부재들은 BIM에 정의된 건축물의 구문과 의미 체계를 따라야하고, 절차를 준수해야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형상에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시적 교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과거의 디지털 모델링은 마치 돌을 깍아 조각을 하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시적 감흥은 디지털 뻘짓에 대한 보상작용을 하였다. BIM에서의 의미라고 하는 것은 부재의 물성과 연결관계, 절차에 관한 것이다. 이 의미를 무시하면서 모델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융통성 없어보이는 의미 덕분에 매스의 각도를 왜 얼마나 틀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대안 A가 대안 B보다 사용자들에게 어떤 편안함을 더 주는지, 혹은 난방비가 덜 드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모델링은 실재 시공과정과 1:1로 제작됨으로 재료간의 접합, 시공 순서, 필요한 부재의 갯수 및 관련된 여러가지 디테일들이 구조도면 보다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도면에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은 모델링 작업의 일부를 구조도면에 첨부하여 프레임 목수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https://blog.naver.com/wish01/222107003436 ) 이처럼 가상 건축물은 소규모 주택 건축에 있어서도 설계와 시공의 간극을 사라지게 하는 핵심적인 도구이다. 장지훈(     Jihun Jang) 건축가의 표현처럼 “공학적, 기술적 요소들을 정보화 하는 것이 모델링의 가치 이며 디자인 프로세스의 요체이다.” (https://www.facebook.com/jihun.jang/posts/3899604936754814). 


디지털 모델이 진화(versioning)하여 LOD(Level of Detail)가 높아지고 설계의 대안들이 하나로 수렴되어 실제 건축물을 표현한 상태가 될 때 그러한 모델을 가상 건물 (Virtual Builidng)이라고 하며 As-Built BIM으로 통칭된다. 즉, 디지털 재료를 이용하여 실제 건축물과 동일한 구법과 절차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Virtual Building은 실제 건축물을 구현하기 위한 목표이자 절차를 담은 명세이며 건축물이 완공되고 나면 그 건축물의 디지털 트윈으로 존재한다. 보르헤스의 지도 우화처럼 이러한 Virtual Building은 실제 건축물의 현재뿐만 아니라 이력, 그리고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과 물리적 변화의 정보(센서 데이터)를 담은 건축물의 지도이다.


가끔 컴퓨터를 멀리 하고 건축의 본질을 보라고 초치는 선지자들을 경계하라. 컴퓨터에 의한 설계 또는 정보모델링(BIM)을 건축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설계의 본질을 이미지, 또는 스케치에 의한 심상 (mental image)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회화적 스케치와 추상적 다이어그램이 ‘건축의 신’에 접근할 수 있는가장 신성한 언어이며 진정한 건축가는 이러한 언어를 통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건축가의 실질적 역할은 이러한 예술적 스케치를 통해서 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여기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서 건축물로 실현하는것은 건축가가 아닌 시공자(builder)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2차원 CAD 도면이나 BIM 모델로 표현된 것은 심상의 재현의 재현으로서 건축의 본질과는 매우 거리가 먼 피상적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모델링은 오리려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로서 익혀야 한다.


"말 한마디 없이도 도면은 그 어떤 시공사가 시공해도 똑같이 결과물이 나와야하는 그림이 아닌 '생각을 전달하는 건축언어'이다. 디자인의 완성은 디테일에 있다." (https://www.facebook.com/sungeun.chun.9/posts/1518452954865020) 전성은(    Eun Chun) 건축가의 표현처럼 설계의 완성은 디테일이지, 스케치나 도면 자체가 아니다. 디테일을 완성한다는 것은 결국 건축가의 심상에 존재하는 건축물과 동일한 가상의 건축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며, 도면은 그 완성도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BIM은 그러한 가상건축물을 표현하는 언어이지, 도면 자체는 아니다.


무수한 설계 대안의 넘나드는 초기 설계는 설계의 가장 창의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    최준석 건축가의 포스트: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456000211141934&id=100001959370289). BIM 기반 디지털 모델의 미덕은 성능의 문제를 초기 설계 단계로 가져와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전성은 건축가의 디테일, 최준석 건축가의 설계 대안 탐색은 설계 프로세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특성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2차원 도면은 다양한 표현 방법중의 하나일 뿐이다. 가상건물의 디지털 정보를 활용한 다양한 성능 시뮬레이션은 설계자의 직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소위 성능지향적 설계를 할 수 있게 한다. 그 ‘느낌’을 정량적,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디지털 모델링 수업의 목적은 다크서클 자욱한 모델러의 양성은 아니다. 단축키 신공이나 손끝 감각으로 자뻑할 필요는 없다. BIM 모델의 부재 하나하나에 부여된 의미는 최종적으로 사람이 아닌 기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를 가르쳐야지 기계랑 경쟁하면 인생이 고달프다. 디지털 시대의 건축가가 사는 방법을 디지털 모델링을 통해서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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