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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r 10. 2021

"기자같이 안 생겼어"

나다움을 꿈꾸게 한 한 마디

명함 없이 사람을 마주하다 보면 받게 되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학생이에요?"

"몇 살이에요?"

"어디 살아요?"

그리고...


"무슨 일 해요?"


아무렇지 않게 내 직업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다들 한 1~2초쯤 당황하고 말한다.


"기자같이 안 생겼는데"



나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만 삼킨다.

'대체... 기자같이 생긴 건 뭐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자는

똑 단발에 검은색 옷만 입고,

가끔은 잠을 못 자서 부스스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냉기가 흘러 말 걸기 어려운,

그런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였단다.

보통의 생각과 달리 웨이브 들어간 긴 머리에,

가끔은 치마 입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을 처음 만나도 생글생글 재잘재잘 혼자서도 잘 떠드는 나라서.

그래서 기자라는 내 대답이 의외였다고.


나도 대학생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기자와 내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서, 나는 절대로 기자를 못 할 것 같았다. 2018년 겨울에 입사를 했는데 그 해 봄까지만 해도 기자는 못한다고 교수님한테 우겼었다. 불과 몇 달 뒤에 내가 기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정말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내 인생이 달라진 거다.



절대로 기자는 못할 것 같던 내가,

겉보기에는 전혀 기자 같지 않은 내가

기자 명함을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순간은 참 많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무례한 취재원들은 나를 그냥 '어린 여자애' 취급을 하기도 했으며,

초면에 위아래로 훑는 시선들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나의 대학생활은 굳이 드러낼 필요 없는 콤플렉스가 되어버렸고, 미인대회 수상 경력은 가십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타고나길 둥글고 부드러운 내 소리는 리포팅에선 여리고 약한 소리라는 단점이 됐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걱정이랍시고 나를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이렇게 여려서,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아서, 이렇게 말라서 어떻게 기자 일 하냐고.


그럼 또 퇴근길 집에 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안 부서지는데... 나도 체구가 작아서 그렇지 씩씩하게 일할 건 다 하는데...'


나를 숨기고 버려야만 적응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괜히 기가 죽었다.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긴 머리가 잘 어울려서,

가끔 치마를 입어서,

잘 웃어서,

목소리가 온화해서,

키가 크고 말라서.


사람들이 내가 기자답지 않다고 느끼는 수많은 이유들에 내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도 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일하는 기자실에서 나만 튀는 것 같고 나만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소외감이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이렇게 타고난걸.


살다 보니 칼 단발보다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리더라고요.

많이 안 웃으려고 해도 타고난 성격이 세상 해맑아서 마냥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해요.

누구를 만나든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웃고 있어요.

타고나길 입이 짧고 몸이 약해서 많이 먹지도 못하고, 살이 잘 찌지도 않아요.

아침부터 온종일 신문과 기사에 파묻혀 살다가도 퇴근하면 가슴 따뜻한 에세이가 끌리는걸요.


이게 저인데 어떡해요.



그래서 저는 포기했어요.

완벽한 기자처럼 보이는 것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틀 안에 나를 맞추는 것도.


대신에 저는 제 이름 세 글자 '서효선'이

곧 장르이자 브랜드가 되는 시간을 꿈꿔요.

딱딱한 뉴스도, 부드러운 라디오도 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으니까요.

한 번 손댄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끈기도 있으니까요.

아나운서로 시작해 지금은 기자로, 또 10년 뒤에는 다른 모습으로 나만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기자같이 안 생겼으면 어때!' 하고

매일 자기 전에 셀프 토닥토닥하면서요.


물론 누군가는 전형적인 기자가 아닌 내 모습을 보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있는 제 모습 그대로 살고 싶어요.

이 모든 순간을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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