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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r 25. 2021

역시, 생명은 위대해

대림동 취재기

대림동은 그러니까, 아이러니하지만,

코로나 덕에 친해진 동네다.


벌써 1년 전, 국내에 코로나19가 막 확산을 시작할 무렵. 회사에서 대림동을 취재하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한 번도 대림동을 안 가본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거부감도 많이 들었다. 대림동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에.


바로 직전까지 준비했던 기획이 다문화 기획이어서였을까. 다문화 학생과 학부모가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느끼는지 취재하던 나에게 대림동 방역 실태를 취재해오라니. 마치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림동엔 중국인이 많아

거기는 미등록 외국인(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이 많겠지

그러니까 그들은 마스크 5부제를 하는 이 시국에 마스크도 못 사고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거야

그러니 거긴 확진자가 많을 거고, 있어도 숨어 있겠지.



이 정도의 느낌...?

굳이 원하시는 게 이게 맞냐고 묻진 않았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내 기사가 괜히 대림동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

선배들이 지나가며 건넸던 말도 하나같이 조심하라는 말밖에 없었다.

과연 조심하라는 건 코로나였을까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대림동 한복판에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대림동 중앙시장 입구에.


사람이 없었다.

적막감 속에서 내 머릿속에 겨우 든 생각은

'과연 이렇게 텅 빈 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에게 무슨 말을 건넬 것인가'였다.


일단 기사 방향 좀 잡아보자 하고 시장을 쏘다녔다. 그러다 급하게 노트북으로 처리할 일이 생겨서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세상에... 아직도 그 순간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시장 한복판에서 촬영 선배를 잃어버렸다.

정말 중국인들만 가득한, 중국인을 위한 시장에

돈 한 푼 없이 스물다섯 살 여자애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런데 또 막상 현장에 나가면 겁 없이 돌진하는 게 성격인지라.

한 2~3분 어쩌지 하고 멍하니 서있다가

또 해맑게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혼자서 둘러본 시장은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고등학교 때 한창 뜨는 중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전공한 탓에 중국어로 된 시장 간판은 한 글자도 못 읽었지만. 뭐 괜찮았다.


시장을 한 바퀴 쭉 둘러보니 예상외로 대림동 시장은 수산 가게가 꽤 많았다. 특히 거기서도 가장 신기하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대림동 수산 가게의 왕은 '자라'라는 것. 


그 무엇도 자라 앞에서는 아무 힘을 못쓴다. 얼음이 가득한 수산 가게 매대 위에서 자라는 자기보다 큰 물고기를 마음껏 밟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보통의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정말 진귀한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자라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니까 얘.. 너.. 지금... 너.. 살아서 와... 다 밟고 다니는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마 자라는 말을 못 해서 대답을 못했을 거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한국어를 모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을 거다.

'그냥 저 여자 자라 처음 보나?' 싶었겠지.


어쨌든 시장에서 배운건

고등어등 삼치든 얼마나 대단한 생선이든 간에

죽어있는 생선은 살아 움직이는 자라를 못 당한다는 거다.


역시 생명은 위대해.



그렇게 자라 사진을 한참 찍고 또 돌아다니다가 컷 촬영을 하고 있던 촬영 선배를 만났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무서울 게 없어진 나는 선배라는 천군만마까지 얻었으니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돌진했다.

정육점에 들어가 사알짝 무섭게 생긴 고기를 가리키며

'사장님, 이거 뭐예요?' 하고 순진하게 물었다.

카메라를 치우라는 손짓과 공격적인 반응이 돌아와도 굴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정말 무작정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가서 계속 한국어로 물었다.

"이거 뭐예요? 저거는요?"

그러다 겨우 내 귀에 들려온 한국어 대답.


그거 닥..닭고기"



세상에. 그 순간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면 사람들은 내 말을 믿을까.

겨우 몇 마디라도 한국어를 하실 줄 아는 사장님을 붙잡고 대화 끝에 얻은 한마디.

"무서워서 치과도 못 가요"

내 기획 기사의 제목은 그 한마디에서 나왔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기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살면 아쉬울 게 없지 않냐고.


아니, 나는 매 순간 사람이 아쉽다. 


사람 하나를 못 찾아서 며칠을 꼬박 여기저기 수소문할 때도 있고,

한 사람 섭외에 내 기사가 왔다 갔다 하고,

한 사람의 인터뷰 스케줄에 내 기사 마감 날이 달라진다.

하루하루 살면 살수록 이 일은 정말로 사람이 중요한 일이라는 걸 배운다.


꼭 기자로 살지 않더라도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는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하나에 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고,

사람 하나에 내 인생이 망할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가 다들 사람의 귀함을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과분한 꿈을 꾼다.

너무 쉽게 인연을 끊어내지 않길.

돈으로도 못 사는 그 소중한 인연을 서로 노력하며 가꿔나가길.


그리고 조금 더 욕심내자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당신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얻었듯, 당신 역시 나를 통해서 좋은 것들만 얻었기를 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몇 가지 말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거다.


"효선아,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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