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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마람 Apr 19. 2024

출산, 드디어 너를 만나다

흔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선택’은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이다. 많은 가짓수 중에 한 가지를 빼내야 해서 아쉽지만 선택은 비교적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어떨까. 겉으로 보기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하나만 꺼내야 한다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 안에서 자유롭기도 하고 제한적이기도 하다. 더 나은 선택이란 없다.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박수 받을 일이다.


퇴원 후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일상이었다. 출산병원, 분만방법, 산후조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선택이다. 출산병원은 보호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계속 고민했다. 결국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퇴원했다. 대학병원에서 출산하면 협진이 가능하다. 혹시나 출산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른 대처를 할 수도 있다. 대학병원 출산은 산부인과 의료진을 향한 불신이 있었기에 걱정됐다. 불필요하고 불친절한 응급실 진료로 신뢰가 떨어질 때로 떨어졌다. 여성병원을 고려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지만 기분은 편해졌다. 임신 초기부터 갔던 병원이고 의사의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산모 본인인 내가 편안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집에서 가까워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여성병원을 택했다. 병실은 1인실이고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여 앞두고 분만방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신을 알게 된 시기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어떤 선택이 더 옳은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돌이켜보면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는 없다. 두 가지 모두 안전한 분만법이다. 산모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본다. 나는 자연분만을 했을 때 과연 통증을 온전히 다 견뎌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가 넘어서는 긴 분만 과정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주변 자극이 최대한 없어야 하는 내 상태를 헤아리면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조언도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허무했다. 결말이 불 보듯 뻔한 거였는데 이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니. 여성병원에서 선택 제왕절개로 분만을 할 예정이었지만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또 다른 불안과 초조가 엄습했다. 수술이 무섭고 두려웠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더욱 조마조마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도 잘한 선택인가 되뇌었다.


산후조리는 조리원에 가거나 산후도우미를 신청하거나 엄마 도움받기가 있었다. 대부분 산모들은 출산병원에서 퇴원을 한 다음 조리원으로 간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조리원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떠올려야 했다. 남편도 없는 곳에서 2주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다. 정신과 보호병동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예약했던 조리원을 취소했다. 산후도우미를 부르는 것과 친정엄마 도움받기가 남았다. 산후도우미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낮 시간 동안 신생아를 돌봐준다. 산모 건강을 위해 음식도 만들어주고 간단한 집안일도 해준다. 정부 지원금이 나와서 합리적인 금액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산후조리 방법이다. 엄마 도움은 편할 수는 있는데 부담이 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신생아를 돌본 적이 없고 나이 든 엄마에게 산후조리를 맡긴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엄마와 육아 방식이 다를 수도 있는데 서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였다. 괜히 다퉈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산후도우미라는 전문가를 쓰기로 했다.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건만 출산 관련해서는 유독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 잘한 선택이라 믿는다.


2021년 11월 22일. 대망의 출산일이 다가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막 떠오른 해가 우리의 출산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거라며 지난날들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제왕절개 날짜는 병원에서 정해준 날들 중에 골랐다. 임신 39주부터 39주 3일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주말을 앞두거나 주말에 출산하면 위급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마음적으로 위안이 되는 22일 월요일로 선택했다. 수술까지 진통이 오지 않아 예약한 날에 병원으로 갔다.


얼마 뒤면 짜꿍이를 만날 수 있다. 출산 전에는 두려움에 호들갑을 떨었는데 당일에는 가슴 벅차고 설렜다. 9시에 맞춰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수술대 위에 누웠다.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줘서 진정이 됐고 마취과 의사가 하반신 마취를 시작했다. 마취제가 들어가면서 발끝까지 저리며 찌릿하는, 전기 통하는 느낌이 났다. 언짢고 불편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서… 선생님,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아요.” “(살짝 미소를 띠며) 네, 걱정 마세요. 약 잘 들어가고 있어요.” 점점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산부인과 의사가 들어왔다. 수면 마취제로 인해 눈이 스르륵 감겼고 잠에 빠져들었다. 필름이라도 끊긴 듯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윽고 누가 나를 깨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더니 눈이 서서히 떠졌다. 마법이라도 부렸나, 거짓말처럼 내 앞에 우렁차게 울고 있는 짜꿍이가 있었다. 의식이 흐릿하고 정신이 희미했지만 아이 얼굴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양수에 불었는지 오동통한 얼굴에 태지가 많이 붙어 있었다. 뒤로는 내 얼굴을 감싸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눈물이 주르륵 흐른 채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세 가족 잘 살아보자는 희망적인 말이 아니었을까. 오전 9시 27분. 그렇게 짜꿍이는 우리에게 와주었다.


출산은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엄청난 기쁨이고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굳이 아이가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아이 얼굴은 굉장히 평온했다. 뱃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긴장해서 얼어붙은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아이에게 고마웠고 그 무슨 수식어로도 표현 못하는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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