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도착해서 시계부터 봤다. 11시 30분 언저리를 가리켰다. 수술실에서 짜꿍이를 보고 약 2시간이 흐른 뒤였다. 뜻밖에도 몸은 쉽게 움직였지만 마취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누워 있었다. 양발이 띵띵하게 터질 듯 부었고 출산을 했는데도 배 크기는 여전히 볼록해 보였다. 페인버스터(통증 잡아주는 국소 마취 시술)를 맞아서 수술 부위가 아프지는 않았다. 제왕절개를 두려워했던 것이 민망했다. ‘이 정도라면 두 번도 수술하겠는걸?’ 속으로 어설픈 허세를 부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때는 정말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제왕절개 이면을. 내가 경험한 일을 아이가 치르게 될 줄은.
잠시 후 깨끗하게 목욕을 한 짜꿍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작은 투명 바구니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나와 남편 이름 끝에 아기라고 적혀있다. 내가 정말 아이를 낳았다는 실감이 났다. 누구를 닮았을까 한참을 바라봤다. ‘큰 입에 축 처진 입꼬리를 보니 내 딸이 맞구나.’ 생각한 동시에, 남편이 연신 내 입과 똑같다며 웃었다. 눈은 언제 뜰까, 뜬 눈이 궁금했다. 하얀 속싸개에 촘촘하게 싸여져 있는 모습이 번데기처럼 보여서 피식거렸다. 주먹만 한 얼굴을 한 작은 아이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뱃속에 있었다니 경이로웠다. 첫날은 짜꿍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아이를 안아봤다. 상상했던 신생아보다도 더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간호사에게 배운 대로 왼손은 목을 받치고 오른손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이에게서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묵직했다. 사람 얼굴이 이렇게 온화할 수 있다니 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출산하고 이틀째부터 제왕절개 통증이 올라왔다. 고통 앞에 당당했던 기세는 쏙 들어가고 한없이 공손해졌다. 제왕절개, 두 번 다시는 못할 일이었다. 인생 처음이니까 멋모르고 결정했던 용기였다. 페인버스터를 제거하고 진통제를 사용하니 쑤시듯 쓰라리고 아파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피부를 절개한 부위는 내 살이 아닌 것 같았고 얼얼했다. 나아지지 않을 듯한 통증에 밤에도 계속 깨서 끙끙거리며 울먹였다. 그동안 나를 자상하게 간호해 주던 남편도 지쳤는지 “왜 이렇게 못 참아?”라고 했다. 간호사 말대로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건데 분했다. 이날의 감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서운하다. 회복을 위해 병실 복도를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산후복대로 배를 감쌌다. 한 손으로는 아랫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액걸이대를 밀며 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제왕절개 후폭풍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훗날 자궁이 빠르게 수축해서 생기는 훗배앓이도 겪었다. 심한 생리통처럼 배를 쿡쿡 찌르는 통증으로 꽤 아팠다. 시간이 약이라며 빠르게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제왕절개로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모유수유다. 출산을 하기 전 여성병원에서 진행하는 산모교실에 갔다. 모유는 신생아에게 훌륭한 영양을 주고 면역력을 길러준다. 엄마는 산후 회복에 도움이 되고 산후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모유수유는 장점이 많은 수유방식이란 것을 배웠다. 임신 후기에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아이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출산을 하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내가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첫 선물이 모유수유였다. 아이로 인해 내 몸이 망가질 거라는 슬픔보다 엄마로서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 적극적으로 모유수유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있었다. 조울증 환자로서 약을 복용하면서 모유수유가 가능한가였다. 교수님은 내가 모유수유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셨다. 출산 전 내 질문에 못할 건 없다는 답변이었다. 약에 대한 안전성은 임신을 준비할 때와 같다고 하셨다. 임신기간 동안 먹은 약을 유지하면서 모유수유를 해보기로 했다. 여성병원은 엄마와 아이가 최대한 편한 방식으로 모유수유를 하도록 도와줬다. 병원 지도하에 욕심부리지 않고 분만 후 약 일주일간 분비되는 초유만 먹일 예정이었다. 아이와 살이 맞닿으며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이 신기했다. 우리 사이가 더 친밀해질 수 있어서 모유수유 시간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고작 한 번밖에 하지 못했다. 아이가 아팠다.
병실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산모님, 아까 보호자분께 말씀은 드렸는데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지금 소아과 과장님이 병실 가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소아과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산모님, 아기가 탈장이 의심되어 대학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봐야 해요. 진료의뢰서 적어드릴게요. 심각한 것은 아닌데 여기서는 확인이 안돼서요.”
“네? 대학병원이요? 탈장이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멍했다. 태어나자마자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니. 신생아 탈장이라니.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이제 생후 2일 된 작디작은 짜꿍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탈장은 생소한 질병이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소아과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작성하고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아줬다. 생후 4일째, 짜꿍이는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에 입원했다. 코로나 시절이라 남편이 혼자 갓난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회복이 덜 된 나는 산부인과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 쏟아져 나올 듯한 눈물을 머금으며 괜찮기를 바랐다.
진단명은 ‘요막관개존증’이다. 요막관은 태아의 방광과 배꼽 사이를 연결하는 관으로 출생 이후 사라진다. 요막관개존증은 관이 퇴화하지 않은 선천기형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남편 휴대폰으로 간호사가 찍은 짜꿍이가 입원해 있는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더 안타까웠다. 내가 제왕절개를 했듯이 짜꿍이가 수술을 하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수술의 고통을 뻔히 알고 있어서 아이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그려지지 않았다. 의료진을 믿어야 했다. 짜꿍이는 나보다 강한 것 같았다. 분유도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온통 아이 생각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