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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o Jan 08. 2024

마음의 고물거림을 정리하는 시간

생성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우리는 어느 운하에서 왔는가!

연말연시가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고물거린다. 나를 달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디즈니 영화 보기는 꾀나 잘 먹히는 편이다. 관람하는 시간 동안 권선징악이라는 안정감이 보장되어 있어 내 내면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데 손쉬운 방편이다.

새해가 되었고 고물거리는 내 상태를 아는지 영화관에는 디즈니영화가 걸렸고,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은 채 직행했다. 이번 영화는 <위시>.

호프도 아니고 위시라... 역시 월트디즈니다!

영화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주제는 내 안의 문제와 닿았고, 서서히 밝아져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생성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우리는 어느 운하에서 온 별인가?

지구별 생명체인 나는 열역학 법칙에 의거하여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서서히 소멸되고 있으므로 되도록 허투루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확인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하며 서로를 향하고 제때 상황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으로 썼으면 좋겠으나 이것은 이론일 뿐.

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이기에 막상 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하기 일쑤이고 상황이 종료되어서야 진정하고 의미를 알아차리기며 이불킥을 하기도 하고 종료되어도 여전히 아리송한 감정에 휩싸여 멍청함을 탓하기도 한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때인데 자기 비하로 귀결되어 무능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그러한 모습이 관찰되는 상황을 보면, 중요시 여기는 대상(존재) 보다 낯설거나 해결되지 못한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애초 쏟기로 한 에너지는 엉뚱한 곳으로 이동한 채 몰입해 소위 ‘헛다리 짚고 아등바등하는 꼴’이 되어 있다. 그뿐이겠는가, 무엇이 중요한지 무지에 휩싸이는 경우도 있는데 분명 중요한 사이임에도 어느 순간 망각한 채 관계의 과정이 무시되거나 등한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재빨리 돌이켜보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닿으면 다행이나 안타깝게도 감정이 상해버린 채 관계의 유효기한이 지났다면 골방에 들어앉아 뒤늦은 후회로 망연하게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나를 살리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지고 그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이 문제가 외부에서 온 것인가 내부에서 온 것인가?’이다.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 편하지만 내 안에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을 허락하도록 해야 함을 학습하였기에 혹여나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나? 일관성이 없었나? 등등 다양한 질문을 해본다. 그렇게 나는 또 내 안으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간다. 방어판을 꼭 쥔 채 웅크리며 떨고 있을 나에게로.


일이나 생활에서 대체로 목적을 명명하지 못하면 행동으로 옮기는데 시간과 에너지의 소요가 많고 어려움을 겪는 성향인 내가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빗장을 열기도 하는데 이때는 상대도 나를 낯설어 하지만 나도 나를 낯설어한다. 사고의 과정을 먼저 거쳐 옳고 그른 것을 걸러내던 이가 어느 날 관계의 의미적인 것을 들먹이니 같은 사람인데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훈련받은 사실위주의 정보로 판단을 내리기보다 관계에서는 특히나 정서적 관계에서는 의미를 먼저 찾을 수밖에 없다. 나는 AI가 아니니까 말이다.


누울 자릴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일과 같이 확고하게 목적이 중요시되는 장면에서는 주의를 집중하는 편이나, 친밀감 혹은 내밀함이 관계에 들어앉기 시작하면 기존의 일관성을 좀처럼 붙잡기 어렵다. 뒤늦게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나는 같은 대상에게 관계 적용에 새로운 방식을 쓰려는 나를 발견하면 ‘아, 이제 나는 우리를 의미롭게(혹은 정서가가 높아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구나.’하고 결론을 내려준다. 그래서 더 이상 내 모습이 나에게는 낯설지 않은데 이런 나의 관계 정의 양상을 잘 모르는 상대에게는 ‘너 같지 않네.’라며 낯선 존재가 되고 거리를 두게 한다. 안다. 상대에게 허락되지 않은 정서가는 부담일 뿐이라는 것을.


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무게가 달라지면 담긴 에너지가 역동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우리도 모르게 ‘편한 대로 마구대함’이 나오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그간의 절제했던 행동이나 언어방식은 풀어지고 편안함을 넘어 부드러움 혹은 친밀함을 가장한 폭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관계는 폭력성을 지니고 결국 특정 색으로 빛을 내던 에너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멸되거나 이동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지 못한 채 이별한다.


이렇게 나의 고물거리는 실체를 파악하고 나니, 새롭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에 그리고 어떻게 중심을 삼아야 할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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