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의 한 마을에서 찾아낸 자연주의 공유행복 공동체 라이프
금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 정도를 달리면 숲속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별칭이 아니라 진짜로 이 마을의 이름입니다. 2023년 2월 기준으로 이 마을에는 약 30가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열리고 같은 금산은 물론 서울과 인천, 대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절대 한 번만 찾는 사람은 없을 금산 숲속마을의 공동체적 삶. 금산 숲속마을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 곳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보고 느낀 바를 로컬인사의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충청남도 금산은 공주나 대전 등 주변 지역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명성이 덜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전국 어디에서나 가까운 충청남도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습니다. 이 곳 지역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져 뿌리를 내린 지역사회의 청년 창작자들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들락날락 협동조합을 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청년들은 금산읍에서도 차로 조금 거리가 있는 남이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과거 귀농귀촌희망센터였던 건물에 '두루미 책방'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차리고 서점 민박인 북스테이부터 독서모임 등 주민들을 위한 각종 문화예술 및 커뮤니티 행사를 운영 및 기획하고 있습니다.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이 곳의 청년들입니다. 금산 숲속마을은 가장 가까운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차량이 아니면 갈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숲속마을을 찾아오는 외부민들에게는 들락날락 협동조합에서 차량 왕복 픽업을 선선히 지원해 줍니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경우 통영행 버스를 타고 "인삼랜드 하행" 정류장을 이용하면 1시간 40분에서 2시간 만에 도착하며, 이 곳에서도 숲속마을까지 픽업 이동이 가능합니다. 금산에 와서 마을 가이드를 처음 해 봤다는 한 주민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금산에 오고 나서 더 문화생활을 많이 한다"며 웃습니다.
워케이션을 온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자유롭게 두루미 책방에서 책을 읽거나, 멍때리거나, 컴퓨터로 일을 하거나, 낮잠을 잘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는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매일 한 잔씩 무료로 음료를 만들어 줍니다. 카페에 찾아온 인근 학교 중학생들이랑 고등학생들 대화에 자연스레 끼어 도란도란 수다를 떨어도 됩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맛있는 귤이나 고구마를 마음껏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내키면 걸어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우선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학교가 나옵니다. 간디학교라는 이름의 대안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학우들끼리 공을 차기도 하고 기타를 연습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하는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염색을 한 친구들, 피어싱을 하고 네일아트를 한 친구들은 외부민들을 보면 인사를 먼저 건네기도 합니다.
학교를 지나쳐 더 걸어가면 아름다운 숲에 둘러싸인 보석사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에는 대단히 높지 않지만 경치가 빼어나고 나무들이 아름다운 명산이 많습니다. 보석사 옆에는 천 년을 살아 온 은행나무도 굳건한 자태를 뽐냅니다. 내륙에 위치한 금산 특성상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역사문화 자원의 훼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심히 관광도시에서 배제해 왔던 충청남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숨은 역사적, 자연적 자원들을 많이 발견해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금산 숲속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은 마을 주민이 진행하는 숲속마을 투어를 참여할 수 있습니다. 도보로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숲속마을은 30가구 정도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마을 주민이 80명에서 90명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마을 유소년들은 서로 얼굴과 이름 그리고 사는 곳도 알고, 아침에 스쿨버스가 오면 누가 아직 안 탔는지도 안다고 합니다. 전체 마을 주민이 들어 있는 단톡방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마을 중요 공지사항은 확성기로 마을 여기저기에 울려퍼지도록 방송을 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건 이 마을에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기 좋은 마을에 자발적으로 남은 지역 대안중학교, 대안고등학교 졸업생들과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을을 찾아 들어 온 젊은 부모님들, 그리고 자연스레 채워지는 유소년 인구들. 아이들은 마을에 오래 살아온 토박이 어르신들과 다함께 마을 잔치에서든 운동 경기에서든 어울립니다. 마을의 부모님들은 모든 아이들의 이모, 삼촌입니다. 부모님이 하루 바빠서 집에 못 돌아오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옆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갑니다.
금산 숲속마을에는 수백, 수천 억 예산을 들이고도 쉽게 이루어내지 못했던 이상적인 커뮤니티 마을의 제도들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확하고 남는 농작물을 마을 정자에 올려놓고 누구나 가져가라고 합니다. 공유 경제가 있습니다. 가구별로 대지를 최소한으로 활용해서 집을 짓고 목재나 흙이 아닌 자재를 쓰지 않기로 어떠한 법적 제약 없이 합의해서 지키고 있으며 샴푸나 린스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합니다. 지역 ESG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환경보호단, 분리수거단 등을 조직해서 마을 자치 규약들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활동합니다. 지역 거버넌스가 있습니다.
숲속마을 누구도 공유 경제나 공동 육아라는 이름 하에 그들이 하는 행동을 규정하고 예산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서로가 더 행복하고 지속가능하게 살 수 있는 비가시적 규약들을 만들어 왔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편이 서로가 더 효율적으로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 듯이요. 유발 하라리가 글로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 소개했던 하루에 6시간 이하로 노동하고도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고, 여유롭게 행복하며 건강하였던 부족 사회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금산에는 명확한 지역 특화자원이 있는데 바로 인삼입니다. 지역은 어떠한 놀거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인구 5만에서 10만에 달하는 군 지역 대부분은 읍내에 나가면 시장을 비롯한 번화가가 나옵니다. 숲속마을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리면 금산읍의 대표 전통시장, 금빛시장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제 3대 인삼시장이 위치한 금산읍에서는 인삼이 잘나가던 한 때 자릿세만 천 만원을 내기도 했답니다.
인삼 특화 도시의 위용은 여전하여 인삼수삼시장에 가면 도매가로 인삼을 살 수 있습니다. 4만 원이면 수 킬로에 달하는 인삼을 한 가득 담아 주는데, 몇 년 전만 해도 30만 원 어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고 하네요. 이 정도 '가심비'면 인삼 원정을 위해 금산을 가는 것도 농담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인삼은 택배로 부치고, 지역에 온 김에 워케이션도 하고 쉬고 가는 거죠.
읍내에서 시장만 봐도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한가득입니다. 채소나 고기의 가격은 확실히 서울 대형마트보다 저렴합니다. 서울처럼 공유 주방을 예약해서 쓸 수는 없지만 문화복합공간인 숲속마을 두루미 책방에서는 카페 주방을 게스트들에게 통째로 빌려줍니다. 시장에서 식물성 재료로만 1인당 1만원 예산으로 현금 쇼핑을 하고, 구매해 온 재료들로 비건 요리 대전을 펼칩니다. 고기 넣지 않은 카레부터 감자로 만든 스페인식 또르띠야, 고구마를 얇게 썰어 도우를 만든 시금치 비건 피자 등 각종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만든 음식은 책방에 모인 십여 명의 여행객들이 다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아름다운 밤하늘을 안주 삼아 불멍이 빠질 수 없죠. 꿀맛이 따로 없는 고구마나 비건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있으니 도 하고 한 지역 농부 어르신이 수레를 끌고 옵니다. '술 만드는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어르신은 돈 한 푼 안 받고 수레에서 청주, 석탄주, 에일부터 라거까지 지역에서 만든 술들을 소개해 주고 한 잔 한 잔 손수 따라주십니다. 술을 먹지 못하는 중학생 친구는 이 곳 책방 주방에서 직접 끓인 뱅쇼를 마십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른 배경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은 각자 취향인 음료를 한잔씩 기울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들을 한 움큼씩 풀어 냅니다. 다들 어제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사건을 나누기도 하고, 앞으로의 중요한 인생 목표나 꿈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는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금산보다 훨씬 더 볼거리가 많고 좋은 호텔과 기반 시설을 갖춘 관광 도시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모닥불을 쬐며 서로를 건너던 언어의 형태들과 분위기의 온기는 어떤 여행 패키지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놀거리도 볼거리도 풍부한 서울에서도 다 누릴 수 없는 이 곳의 지역 자원들이 조합되어 만들어 낸 '바이브' 덕분입니다.
'오도이촌'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일주일에 5일은 도시, 이틀은 시골에서 보낸다는 뜻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지역에서 며칠씩 시간을 보내며 일이나 쉼을 즐기는 '워케이션'이 새로운 여행 문화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은 있지만 굳이 먼 로컬까지 노트북을 들고 찾아가서 일을 하고 쉬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을 곰씹어보는 여러분에게 이 글이 하나의 단서를 던져 준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금산 숲속마을 워케이션: 소규모 마을 공동체에서 이루어낸 공유 행복 로컬 라이프
글: 전서은 (로컬인사 대표) / 사진: 곽승훈 (로컬인사 포토그래퍼)
로컬인사는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예술 아카이빙 기업입니다. (인스타그램 @local.i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