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말들은 어땠나요?

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by Grace Lee
흔하디 흔한 과일 하나 설명하기도 이렇게나 힘든데 나는 알고 당신은 모르고, 나는 겪고 당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라면 오죽할까. 그래서 대화가 각자 말을 하거나 그저 그런 진부한 언어의 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거다.

그럼에도 나만 겪은 일을 당신에게 알리고, 당신이 겪은 일을 내가 알 길은 언어밖에 없다. 언어는 강철보다 견고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려 금 가게 하고, 틈이 생기게 하고, 마침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언어의 한계를 서로 달리 살아온 삶의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된 거라 믿어 소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휘를 선택할 때 조금은 더 친절해질 수 있다. 상대의 처지에 적절한 낱말을 찾게 된다.

<어른의 어휘력> 중에서


‘내가 무슨 유익을 누리자고 이렇게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지. 큰 도움이 되긴 할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아주 가끔씩은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 ‘어른의 어휘력’은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한 인간의 행위에 어떤 확신을 주고 원동력을 불어넣어주는 책이었다. 사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조금 어색하다 싶은 곳들도 제법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철학과 가치관이 참 진중하고 빛나서 그 거슬림 쯤은 눈감아 주게 되었다. 겨우 2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이미 나는 이 책을 구입해서 소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게 된 것 같다. 피상적으로 보고 듣고 스쳐 지나가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느끼는 연습을 자연스레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보기보다 참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쩌면 제일 적당한 언어를 고르고 맛깔나게 요리해 내는 수고야말로 사람을 살리고 인간을 이어지게 하는 고결한 작업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독서모임의 어떤 분은 도저히 자기와 맞지 않아 완독은 무리일 것 같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영혼의 수프 같은 책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도, 털어놓을 수 없는 오랜 내 마음 속 절망과 답답함을 이 책은 너무도 투명하게 줄줄 읊어주고 있었다. 집중하면 하루에 책 한 권도 금방 읽어 내곤 하는 나인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아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느라 진도를 계속 못 나가고 있을 정도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책이었다.


"언어가 있는 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간절함은 정말 의미있는 울림이자 대견한 목소리였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단어를 더 잘 익혀야 한다는 그 아름다운 동기도, 그리고 사람은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도 내겐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꽉 막힌 누군가와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아 좌절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순간, 인간에게는 그래도 ‘언어의 끈’이라는 가능성의 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곱씹으며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작가는 포기와 단절이 익숙한 오늘날의 삭막한 인간군상 속에서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붙들자고 외치는 선교사나 포교자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말한다. ㅡ내 생각을 단어로 보다 정확하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의미있고 고차원적인 능력이며 더 잘 살기 위해 인간은 소통능력, 특히 어휘력의 확장을 갈망해야 한다.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생각의 한계다. 내 생각의 폭은 딱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 만큼이다. ㅡ 그래,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더 잘 살기 위해서였다. 그냥 심심풀이 취미가 아니라 생존 공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생존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안다. 문맹률은 낮지만 실질문맹률은 70퍼센트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인간 사이의 소통의 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어휘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휘력을 키워야 하는 논거를 설득력 있게 나열하고 있다는 점 모두 마음에 든다.


“책을 읽어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라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뭐하러 읽어요? 요즘 세상에 정보는 어디에나 널렸는데. 책은 시간만 많이 들고 별 도움도 안되는 짓이예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어른의 어휘력’은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한다. 그런 이들과 대화를 하면 늘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가슴이 답답했는데, 이 책은 사이다처럼 막힌 속을 뚫어준다. 그리고 일상에서 쓰려하면 막상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 혹은 헷갈리거나 잘못 쓰고 있는 단어들을 소개해주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사실 책의 절반보다도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 혹은 이름을 잘 몰라서 설명이나 서술로 대체하는 사물들을 소개하는 내용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뒷부분은 ‘지도서’나 ‘사전’의 개념으로 느껴져 누군가에게는 참 결이 맞지 않고 따분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이 책의 서두ㅡ 동기와 어휘력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ㅡ가 충분히 값지고 위대하기에 이 책은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하는 정말 괜찮은 책이다.


더 잘 살기 위해,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단어를 익히고 어휘를 공부해야 한다는 작가의 조곤조곤한 설득이 잔잔히 가슴을 울린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대학입시만을 위해 달리다가, 크면 돈과 야망만 쫓아 사는 어른이 되어버리기 전에, 가능하면 일찍 어휘력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책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 <존중> 이라는 덕목도 상대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를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이니 말이다. 인간에 대한 소중함,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언어와 어휘력의 중요성을 늦기 전에 일찍이 깨우쳐야 한다.


요즘 여기 저기 곳곳에 불통 천지인 것은 직면한 문제 그 자체의 무게도 있겠지만 소통을 위한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이지 않고 단절과 외면을 추구하는 우리 각 개인과 사회의 무관심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많은 이들이 이해와 공감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알아가고 그것에 시간을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단어에 대한 섬세함을 길렀으면 좋겠다. 단어를 맛깔나게 요리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를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다 정확하고 따뜻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향한 의지를 갖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이 적어도 그 가치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며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로 삼는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 헌신 같은 감상적인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정확한 소통을 통해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을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게 다루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당신에게도 기꺼이 추천한다.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필사해 두었던 김애란 작가의 문장이 함께 떠올라 함께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오늘 나의 감동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김애란, 잊기좋은 이름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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