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드라마 <우리 사랑했을까>로부터 쓰는 인간관계 이야기

by Grace Lee

어느 순간부터 나도 방영 중인 드라마 <우리 사랑했을까>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은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싱글맘이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그려내어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점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듯하다.

<우리 사랑했을까>는 캠퍼스 커플이었던 대오와 애정의 숨겨진 이별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대오는 자신을 갑자기 버린 노애정을 14년 동안 미워하고 원망하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러나 애정의 기억은 아무래도 다른 것 같다. 그 숨겨진 사연이 이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드라마가 후반부에 가까워지면서야 비로소 이별의 사연이 드러나는데, 꼬이고 꼬인 상황 덕에 두 사람은 십수 년 동안이나 서로가 버림받았다는 상처 속에 살고 있었다. 실은 누구도 떠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기구한 사연을 보고 있자니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은 비단 연인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서로 모든 걸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상처를 주고 오해에 빠져 평생을 원망하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 간은 어떻겠는가. 어쩌면 그러한 오해의 연속이라든지 인연에서 악연으로의 변주는 모든 인간관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 대해 수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이러한 변주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용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악랄한 사람을 만날 때, 혹은 믿었던 누군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우리는 나만의 판단에 갇혀 그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혹은 그 상처를 털어내지 못해서 오랫동안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럴 땐 먼저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은 연약하고 간사한 존재라는 것을, 나 조차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동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불가능하다. 인간은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다.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 알고 보니 누군가에게는 원수 같은 사람이기도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결코 한결같이 좋은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누군가와 어긋났을 때, 나도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고 내가 미운 그 사람도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건 더불어 사는 세상에 필연적이고 특히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아홉 살 인생>의 215페이지에 인간사가 아주 잘 함축되어있다.


어차피 죽기 마련이라면, 사는 동안만큼은 사람답게 사는 편이 한결 낫다.
사람들이 서로 기대하고 믿고 사랑하고, 때로는 배신당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증오하고,
또 때로는 지지고 볶고 우당탕퉁탕 싸움박질도 하고 사는 광경에 어느 것 하나 부질없는 짓거리라곤 없다.
이 모든 광경들은 저마다 소중한 인생의 한 장면들이며,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것도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잘 살기 위해, 사람은 결코 혼자 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마나 강해지는지, 나는 우리 동네 외팔이 하상사의 경우를 보고 일치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위기철 <아홉살 인생> 중에서



덧붙여,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서도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마치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되듯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한 명씩 눈이 멀게 된다. 사람들은 처음엔 좌절하다가 다른 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체면과 윤리라는 굴레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추잡하고 악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읽었을 땐 그저 거북하고 불편한 느낌뿐이었는데, 삼십 대가 되어 다시 읽으니 작가의 의도가 다르게 해석된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기 위해 더없이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김진영 씨는 그의 책 <아침의 피아노>에서 죽음을 앞두고 보니 남은 것은 사랑뿐이라고, 사랑할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고 있다. 산골의 어느 계곡 물소리, 바깥 풍경을 자주 묘사 하지만 늘 그 속에 담겨 있는 그의 마음의 소리는 결국 더 많이 웃고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였다. 남은 에너지는 사랑에만 쓰라는 소중한 외침이었다. 그러니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는 젊은이 같은 피 끓는 열정으로 맞서기보다 노인 같은 잔잔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인간은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오해와 상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의 부주의함으로 입은 내 상처를 나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한번쯤 덮어주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실망하더라도 가슴속에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가슴에 와 닿는 관계의 지혜는 이것들 뿐이다. 당신이 오늘 꼭 이 깨달음을 얻어가기를 바란다. 그대가 이렇게 넓고 깊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강력) 추천도서

1. 아홉살인생 - 위기철

2. 눈먼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3. 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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