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겠다고?

독서노트 - 예술하는 습관(메이슨 커리)

by Grace Lee

<예술하는 습관>은 제목만 보면 예술가의 좋은 습관들에 대해 구구절절 피력할 것만 같은 책인데, 그냥 정말 담백하고 심플하게 한 개인으로서 예술가들의 삶이 어땠는지, 예술활동에 투자한 시간과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요약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덕분에 독자는 이름과 작품 정도만 아는 낯선 그들의 인생을 잠시나마 둘러보게 된다. 사실 예술이나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책은 대개 부담스러운 설득의 논조와 지루한 서사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반면, 이 책은 한 작가당 3페이지를 넘지 않고 있어 전혀 읽는 데 부담이 없고, 바쁠 땐 잠깐 손을 놓고 언제든지 다시 읽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기 때문에 가독성이 참 좋다.


이상하게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나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날엔 글이 잘 안써진다. 시간이 많으면 오롯이 집중해서 무언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빈둥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카카오에서 새롭게 런칭한 ‘프로젝트 100’에도 ‘아침 6시 기상 인증’ 이라든지 취준생이나 프리랜서들이 직장인의 근무시간에 맞추어 출근 / 업무 / 퇴근을 인증하는 방에 참가자가 꽉찬 것을 보면, 아마 정해진 시간표가 없을 때 무너지기 쉬운 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여러 명의 예술가들의 가장 큰 교집합도 바로 규칙적인 습관과 일상 속 시간을 쪼개 예술활동의 시간을 확보해 두는 어떤 ‘일상의 반복’이었다. 집이나 혼자만의 작업실에 있어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루스 아사와라는 조각가는 “예술이란 일상의 일부” 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 말이 모든 것을 다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철저한 시간관리와 정해진 스케쥴대로 따르는 규칙적인 하루하루, 매일 같은 시간을 지나는 성실함이 예술가의 삶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흔히들 예술가를 떠올리거나 혹은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이 머릿속에 생각하는 로망은 회사를 그만 두고 글에 열중하는 어떤 ‘자유로움’ ‘광기’ ‘일탈’ 을 상상하곤 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글을 더 많이 쓸수록, 글쓰기와 예술에 대한 책들을 더 많이 읽을수록 듣게 되는 그들의 공통점은 ‘지루함’ 과 ‘성실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같은 시간 출근하고 같은 일을 하다가 퇴근하는 지루한 일상도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영감은 결코 한가하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적인 습관 안에서 계속 꾸준히 하루의 몫을 해내다 보면 발견한다는 말이다. 또한 일상이 곧 예술의 소재와 영감이 될 수 있으니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은 오히려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서 쓸 때, 바쁠 때 더 잘 찾아온다.


규칙적인 습관 따위는 없었다는 마거릿 미첼이나 마감기한을 지키지 않고 게을렀다는 몇몇의 예술가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대부분 다작을 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예술가들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특히 새벽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는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들이 많았고, 퇴고를 수도 없이 하는 것을 중요시 했다고 하는데, 사실 초안 쓰는 일보다도 퇴고 또한 굉장한 인내와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이다. 여러 편을 자주 쓰다보면 여러 번 공들여 고치기가 여간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실함은 가장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지키기 힘든 일인 것이다.


예술가들의 공통된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관리'였다. 소식과 건강식을 즐겨하는 작가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렇게 하면 과식이나 부대끼는 뱃속 때문에 집중을 잃는 일도 없고 좀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몸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관리인데, 약물에 의존했던 작가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보아 글쓰기에 집중하려면 어느 정도 안정된 심리상태가 중요한 것 같다. 기분이 어두우면 예술성이 더 발휘될 것 같지만 그 어둠에 잠식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너무 흥분만 하면 집중력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예술가는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에도 힘써야 한다.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쩌면 조금 뻔한 말들, 어릴 때부터 익히 듣던 말들 ㅡ 성실함, 자기관리, 평점심 같은 진부한 단어들 ㅡ 이 결국 예술가를 빚어 간다는 소박한 비밀을 깨닫는다.


나의 이야기를 짧게 덧붙이자면, 사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북두칠성 독서모임’도 내가 늘 읽고 싶은 책만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면 마감 전날까지도 도저히 손이 안가는 책도 있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까스로 읽다보면 느끼는 바가 분명 있다. 시야가 넓어지거나, 생각이 확장되거나, 한 걸음 성장하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인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루종일 자유로운 시간의 지배자가 되면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우물안 개구리가 되거나 침대에서 뒹굴대다가 끝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김연수 작가의 책 <소설가의 일> 의 한 글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내일 또 다시 '똑같은 월요일'이 시작되지만 우리가 꿈꾸는 어떤 성취는 그 지루한 반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한번 기억해보려 한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꿋꿋하고 성실한 당신의 하루는 그 자체로도 까만 하늘의 별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다고.

그렇게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뭔가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맛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거나 갑자기 나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략)
스무 살의 내가 역전 근방에서 매일 몇 편씩, 때로는 몇십 편 씩의 시를 노트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가게 주인들의 세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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