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재미없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을 때
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16쪽)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77쪽)
가끔,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이 곧 노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갑작스런 사고를 맞이한 지인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이면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에 깊이 잠기며 “오늘도 감사하게 살아야겠다. 가족들에게도 더 잘해야겠다.”는 절절한 다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얼마나 알차게 보내는지 모른다. 독한 몸살을 앓고 난 뒤나 질병으로 큰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에도, 사람들은 늘상 보던 똑같은 풍경을 보며 “경이롭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행복하다”는 말을 메아리처럼 반복한다. 그리고 더 많이 웃는다. 비록 약발이 한 열흘 정도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병이라든지 관계의 문제라든지 삶에 크고 작은 시련이 찾아올 때, 우리는 평소에 안 하던 것들을 하나씩 하게 되는 것 같다. 비로소 일상에 깊숙이 머무르며 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작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부정하던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마음, 발에 차이던 작은 돌멩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손으로 들어 올릴 줄 아는 마음, 겸손하게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 천천히 여유롭게 숨을 고르게 해 주는 마음은 유독 좌절하고 앞길이 꽉 막힌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 아침의 피아노 」는 나에게 죽음을 기억하게 해 주는 책이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게 해 주는 책이다. 감기가 쉽게 낫지 않아 몸이 천근만근인 날, 아침부터 말대꾸하는 딸아이와 투닥투닥 씨름하고 하루 종일 모든 것에 짜증이 나는 날, 이래저래 다 성가시고 모난 마음이 자꾸 쌓여가는 날이면 나는 꼭 이 책을 꺼내 든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할 때도 역시 이 책만 한 게 없다. 한쪽을 넘지 않는 짧은 메모들을 부담 없이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다 보면, 채 몇 장을 넘기지 않아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앞두고 쓴 그가 남긴 짧은 메모들은 지극히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과 감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삶의 끝에서 한 그의 고백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정말 마지막이 되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되면 그제서야 사람은 비로소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나면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남의 시선, 갖지 못한 것들, 죽도록 미운 사람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 내 자신과 소박한 일상에 집중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기하게도 그는 자신이 잃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주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그의 초점은 오직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에게 사랑을 갚을까에 있다. 죽음을 앞두고 보니 남은 것은 사랑뿐이라고, 사랑할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고 있다. 산골의 어느 계곡 물소리, 바깥 풍경을 자주 묘사 하지만 늘 그 속에 담겨 있는 그의 마음의 소리는 결국 더 많이 웃고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였다. 남은 에너지는 사랑에만 쓰라는 소중한 외침이었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가슴 절절이 깨닫는 순간이 바로 어른이 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은 보통 김진영 씨와 같이 인생의 큰 장애물을 만난 뒤에 찾아오곤 한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많은 이들이 깨달은 행복이라는 게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사실 우리도 지금 매일 그렇게 살면 될 테지만, 나도 당신도 그렇지 못하다. 욕심과 비교의식, 타인에 대한 미움의 시선을 결코 스스로 거두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
당신의 마음이 불평과 원망으로 꽉 차 버린 어떤 날에는 한번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보기를, 그리고 「 아침의 피아노 」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의 마음을 녹여주었던 이 책의 마법이 당신에게도 통했으면 좋겠다. 장례식장을 나설 때 들던 그 애틋한 마음들을 가끔씩이라도 꺼내 기억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지도, 조금 더 행복할 지도,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