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 정지우
조금 뻔한 듯한 제목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솔직해서 좋다. 흔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아닌 척, 다른 이야기인 척 기교를 부리는 책들보다 투명하고 담백해서 좋다. 게다가 <아케디아, 지금 여기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병>이라는 제목의 첫 장부터 핵심을 담고 있다. 보통은 조금이라도 더 읽게 하기 위해 중간이나 말미에 하고픈 이야기를 꽁꽁 숨겨놓을 텐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 제목과 첫 장이 사이좋게 나란히 빛내주고 있다.행복은 바로 여기 손 닿는 곳에 있고,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 찾아와도 결국 묵묵히 일상에 머무는 일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저자는 꼭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이 비록 내 책을 단 한 챕터만 읽더라도 이것만은 꼭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따뜻한 첫인상 덕분에 나는 의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새벽까지 드라마를 본 적은 있어도 밤을 새우고 책을 읽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바쁜 스케줄이 줄줄이었던 주말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삶과 마음속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자기만의 밤에 깊이 몰두할 고유한 순간을 가지면서, 예술이든 역사든 거대한 것과의 연결점을 기억하면서, 때로는 아픔 속에 들어가 ‘타자’가 되어보면서, 매 순간 디테일을 잃지 않으면서 그는 그렇게 행복 안에 머무른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거나 발명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행복을 누리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심지어 타고난 천성으로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오래전부터 자기만의 행복을 발굴한 결과 그런 삶을 얻었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는 오랜 싸움의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삶의 어딘가에 숨어 있던 행복을 끄집어내어 드러나게 하고, 삶 속에 안착시키는 법을 알게 되었다. (26쪽)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아무런 비웃음이나 열등감, 시기나 조롱, 질투나 피해의식 없이 바라봐 주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의 삶에는 내가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어느 지점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도 나의 삶을 어느 면에서는 부러워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가 더 멋진 삶으로 인도되어가기를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사람과 좋은 오후를 보내고 싶다. (136쪽)
오늘 하루도 지나갔고, 몇 달 뒤면 이 하루의 어떠한 세부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하루를 돌아보며, 곁에 있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점에 대해 한 번 생각하고 오늘의 소중함과 의미 있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 하루는 더 가치 있는 재료가 되어 삶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나날들을 섬세하게 잘라내어 간직하는 일은 우리를,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303쪽)
저자가 고백한 것처럼 나도 삶을 행복으로 물들이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그리고 올해는 특히 책을 많이 읽으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고 발견하는 방법을 조금씩 깨우쳐 가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저마다 깨달은 진리에 대해 입을 모아 전하더라도 책이나 이야기를 바로 오롯이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엔 세월 속에서 스스로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행복을 찾는 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나이를 어느 정도 먹어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는 30이라는 숫자가 마치 나를 억누르는 관이라도 되는 듯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벽하지 못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는 재미를 알게 되어서인지 나이 먹는 게 결코 싫지 않다. 물론 젊음이 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연말이면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 사무치게 절절매던 마음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내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져간다.
시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쉬워 부지런히 새기고 적다 보면 ‘시간을 담는 작은 항아리가 생긴다.'는 저자의 말도 참 멋졌다. 시간을 담는 항아리라. 나에게 시간을 담는 항아리는 무엇일까. 사진첩을 가득 채운 아이의 사진, 매일 출퇴근 길을 오가며 수첩에 끄적이는 메모들, 금요일 만큼은 꼭 지켜내는 세 식구가 마주하는 저녁 식탁에서의 대화 같은 장면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 조금 질투가 났다. 심리학자도, 정신과 의사도 아닌 저자가 행복과 인생에 대한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은 많이 부러웠다. 나도 인생철학과 행복에 대한 책을 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내게도 글을 담가둔 항아리들이 있는데, 몇 년째 땅 속에서 묵은지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잠깐 의기소침해졌다. 그의 항아리를 알아봐 주고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출판사를 만난 것이 참 크나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냐고 어린애처럼 심통을 부리고픈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얼마나 글을 사랑하며 글에 푹 빠져 살았는지 알게 되어 이내 나의 마음은 점점 겸연쩍고 미안해졌다.
이 책도 내내 말하고 있듯, 내가 출간 작가가 되든 그렇지 않든 그저 지금처럼 쓰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면 될 일이다. 책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내 글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또 다른 행복들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씩씩하게 나의 하루를 다시 시작해 본다. 비교하는 마음, 불행한 마음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나에게도 행복에 머무를 줄 아는 능력이 생겨서 참 다행이다.
서른넷, 나도 이제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은 여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