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튼 목욕탕, 정혜덕, 위고 」
좌충우돌이 잦아진 날이면 목욕탕에 갔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어깨를 으쓱했다가 다음 날 와장창 박살 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40도로 데워진 탕에 들어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 보면 죽을 때까지 매일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울과 무기력을 떨치고 요동치는 마음을 다독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친구들, 그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아기가 걸음마하듯 발을 옮겼다.
목욕탕은 지친 마음을 쉬게 할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치료’하기에 적합했다. 탕에 들어앉은 지 10분쯤 지나면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그럴 때 조용히 눈물을 같이 흘려도 괜찮았다. 얼굴이 좀 벌겋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보일 테니까. 목욕탕에서는 몸뿐 아니라 마음에 찌든 시커먼 때를 자연스럽게 내보낼 수가 있었다.
「 아무튼 목욕탕, 정혜덕, 위고 」 중에서
언젠가 류시화 시인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투우 경기 중 소가 휴식을 취하는 장소 ‘퀘렌시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 개념을 인간에게로 옮겨오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도피처가 된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도 '퀘렌시아'가 꼭 필요하다는 그 이야기를 읽은 뒤로는, ‘퀘렌시아’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신기하게 기분이 조금 좋아지곤 했다.
이래저래 자꾸 꼬이는 날엔, 누군가 내미는 손길도 성가시고 모든 게 다 잿빛으로 보이기만 한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바싹바싹 메말라 가는 내 위에 ‘긍정 참기름’을 한 방울씩 톡 톡 떨어뜨려 주는 건 역시 좋아하는 일들을 생각할 때뿐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아무튼 목욕탕>은 나만의 ‘퀘렌시아’를 저절로 찾아가게 하는 책이자, 읽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지는 안마기 같은 책이다. 읽다가 슬슬 지루해진다 싶을 때쯤이면 여탕에서 남자로 오인받은 코믹한 일화라든지 애늙은이 같은 소릴 하는 아들 얘기 같은 것을 적절히 풀어놓아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사실 몇 년 전부터는 목욕탕만 가면 머리가 핑 돌고 탕 안에서 십 분도 못 버티게 된 나라서, 이제 ‘목욕탕을 좋아한다’라고는 말할 수가 없게 됐다. 그 슬픈 사연 덕에 독자로서 황홀한 재미나 감동은 느끼지 못했지만 대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다독이는지를 알게 됐다. 더불어, 어린 시절 추억들을 방울방울 떠올릴 수 있어 애틋했고, 세월의 변화와 나이를 먹는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할 찰나를 주는 점도 참 좋았다.
딸만 둘인 집이라 우리 자매는 초등학교 때까지 이 주에 한 번쯤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곤 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나도 입욕장 안에서 초코우유를 먹고 싶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꼭 목욕을 다 하고 밖으로 나와 옷을 입고 나서야 초코우유를 사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입욕장 안에서, 그 시끌시끌하고 습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달콤한 쵸코우유를 마시고 싶었는데... 동방예의지국의 뿌리를 잘 지키는 엄마를 둔 어린 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슬픈 전설이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고야 말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나도 엄마의 등을 밀어주게 되면서 점점 목욕탕 가는 일을 즐겨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 책을 읽다 말고 혼자 멋쩍게 웃기도 했다.
그녀가 풀어놓는 목욕탕과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이였던 나, 엄마가 된 나, 아내로서의 나, 언젠가 할머니가 될 내가 연극에서의 멀티맨처럼 눈 앞에서 이리저리 옷을 갈아입고 왔다 갔다 한다. 목욕탕이라는 친근한 소재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주고, 울고 웃던 오랜 추억도 꺼내 주다가, 결국 노년의 나까지 한번 그려보게 한다는 점에서 <아무튼 목욕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긴 책이었다. 게다가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몇십 년 뒤면 거의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짠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 추억이 사라지는 기분이니까.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을 가던 어린 나는 이제 어느덧 엄마가 되어 아이의 손을 욕실로 잡아 끈다. 코로나 덕에 공중목욕탕은 더 이상 갈 수 없지만, 대신 이삼일에 한 번 딸과 거품목욕을 함께 한다. 좁은 욕조 안에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낄낄거리면서 솜사탕이다, 수염이다, 시시한 장난질을 하면서 그렇게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아무튼 목욕탕>를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난 뒤, 주방으로 들어가 뱅쇼를 끓인다. 그녀에게 목욕탕이 쉼의 장소였던 것처럼, 나도 나의 사랑 뱅쇼를 홀짝이며 다시 한번 행복에 깊숙이 취해 본다. 진득하게 올라오는 계피 향을 맡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도 잠깐 머물러 본다.
'졸린 아침의 아이스 라떼 한 잔, 어느 저녁 빅뱅의 붉은 노을을 틀고 거실 창을 거울 삼아 막춤 추기, 가끔 엄마 집에 들를 때마다 낡은 피아노로 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05번, 읽고 싶은 책을 야금야금 주문하는 일, 환절기가 오면 아울렛에 가서 두 손 가득 옷 쇼핑하기, 소중한 사람들 초대해서 요리해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 바라보기. '
선뜻 내키지 않고 때로는 하기 싫은 일들을 더 많이 해내야만 하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자리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들로 작게나마 일상의 숨구멍을 열어둘 수 있어서 문득 참 다행이다 싶다. '아무튼' 에세이 시리즈가 점점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삶에 쉼표를 찍고 행복을 건네주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어쨌거나 오늘 밤도 당신만의 퀘렌시아에서 그저 많이 많이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