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작가정신>
옛 것이 궁금할 때 우리는 박물관에 간다. 역사책을 읽고, 때로는 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문화유산 답사도 떠난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래된 흔적들로 앞선 이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는 있어도 그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정말로 궁금한 건 그들의 생생한 하루라든지 속마음 같은 것이 아니던가. 밀착취재 카메라가 되어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한숨소리가 버무려진 실감 나는 인생을 엿보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땐 뭐니 뭐니 해도 문학 만한 것이 없다. 때로는 짧은 고전 소설 한 편이 박물관이나 유적 답사보다도 훨씬 더 가깝게 과거와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시대상을 잘 담아내는 것이 소설의 묘미라고 한다면, 박완서의 단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그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냈다.
‘70년대의 대학생활은 이랬구나. 우리가 지금 ‘아파트’라는 이름에 느끼는 자부심과 경멸감을 오십 년 전 우리 엄마 아빠의 젊은 날에도 비슷하게 느꼈구나. 그 시대 일하는 여성으로 사는 엄마들의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하고 무거웠겠다. 부부 싸움하고 화해하는 패턴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비슷하구나.’
읽는 내내 지금과 전혀 다른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이질감을 느끼다가도 집 장만에 대한 꿈과 좌절, 빈부격차, 날로 치솟는 부동산값 앞에서 느끼는 설움은 또 2021년의 것과 너무나 닮아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수년 전 ‘응답하라 시리즈’가 히트를 친 것은 다들 지나온 시절이 궁금하기도, 그립기도 하기 때문일 텐데, 이 단편집을 읽고 나면 1970년대로 떠나 몇 년쯤 살다 온 기분이 들만큼 그 시대 사람 사는 풍경을 구수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목처럼 우리 이웃들의 일상을 친근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만큼 아주 짧은 ‘콩트’들이 한 사십 개쯤 알차게 실려 있다.
슬픈 사연들부터 소박한 웃음이 나는 사연들까지 푹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부모님의 젊은 날을 상상해보게 되면서 마음이 찡해진다. 젊은 이들은 태어나기 전의 세상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고, 부모님들은 모처럼 추억을 소환할 수 있으니 가족과 함께 읽기에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두 번째로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어딘가 ‘어설프기’ 때문이다. 여기 모인 글들은 시시하고 소박하다. 거르지 않은 젖소의 우유마냥 비릿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맹물처럼 시시하기도 하다. 어딘가 모자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툭하면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뚝 뚝 끊겨버리는 탓에 허무하고 배신감마저 든다. 다듬지 않아서 촌스럽고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성공 뒤에 가려진 수많은 실패가 있다. 수많은 연습이 있고, 좌절과 눈물이 있다. 이름난 작가에게도 구겨진 종이와 닳은 연필로 가득 쌓아 올린 세월이 있다. <그 여자네 집>, <그 많던 싱어는 누가 먹었을까> 등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작품이 수두룩하고, 도서관에서 ‘박완서’라고만 검색해도 몇 백개의 결과가 뜰만큼 다작을 한 유명 소설가도 이런 초짜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은 우리에게 당당하게 보여준다. 그렇다. 완벽한 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수줍고 어설프기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은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간 다섯 살 아이들처럼 수줍음과 용기, 풋풋함과 열정, 그런 아름다운 빛깔들을 지녔다.
박완서 작가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고, 하루를 누구보다 정성껏 살아갔던 사람인 것 같다. 평소에 다른 이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는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작품을 봐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는 더더욱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희로애락이 뒤섞인 이 인생들을 쓸쓸하거나 너무 호화스럽게 포장하지 않은 것도 참 마음에 든다. 어떤 삶이건, 기쁠 때도 슬픈 때도, 가난해도 부자여도 ‘다 아름다운 삶’의 일부라고 아마 말해주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아 자꾸만 먹먹한 기분이 든다.
짧고 뚝뚝 끊겨서 감질 맛 나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금방 읽다 덮고 나중에 또 생각날 때 읽을 수 있어 부담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편하게 읽을 수 있으니 화장실에서 5분쯤, 지하철에서 한 십 분쯤, 그리고 던져두었다가 며칠 있다 또 생각날 때 다시 펼쳐 보기에는 더없이 좋다. 그런 식으로 짬짬이 읽다 보면 완독도 어렵지 않다.
2021년의 봄을 건너가고 있는 나의 하루를 가만히 곱씹어 본다. 이 자질구레한 웃음과 고민들이 모인 나의 하루와 당신의 하루가 모여 이 시대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일 테다. 나의 삶도 한 편의 소설이 되어 미래의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경건해진다. 좀 더 웃으면서, 좀 더 책임감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 아빠의 젊은 날로 여행을 떠나게 해 준 박완서 님에게 참 고맙다. 아마 다섯 살쯤이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독산동 언덕 위 벽돌집이 문득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이 책처럼 시대를 잘 담아내는 좋은 글들이 많이 남겨 지기를, 백 년 이백 년 뒤 2021년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책을 통해 미래의 친구들과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내가 오늘 1970년 그들을 만났듯이.
무허가 동네는 파리나 모기나 그 밖의 나쁜 것들만 키워내는 줄 알았더니, 그 아이처럼 건강하고 마음씨가 넓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키워내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이 놀랍고 유쾌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편- 중에서
여편네 티를 극복했다는 긍지와 여편네 노릇도 못 하고 있다는 열등감은 백지장의 표리처럼 결국 같은 거였고 우린 ‘열심히’한 면만을 강조하고 한 면은 무시하려는데 김 교수는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쪽을 팔라당 뒤집어 여봐란 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아파트 열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