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이치다노리코, 드렁큰에디터
사실 크게 끌리지 않는 책이었다. 제목이나 표지의 사진만 보면 왠지 내 스타일도 아닐 것 같고, 분명 시시한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가벼운 에세이일 것이라 넘겨짚었다. 그래도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긴 읽어야 하니 의무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금방 뚝딱 다 읽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은 제목처럼 저자가 행복을 찾고 자아를 확고히 하면서 겪은 의미 있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이십 대의 통통 튀는 에세이가 아닌 마흔, 쉰에 접어들면서 깨달은 진득한 삶의 이야기들이라 개인적으로 와 닿는 면도, 배울 점도 많았던 것 같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그녀만의 인생철학을 똑 부러지게 잘 녹여낸 데다 공감의 포인트들이 많아서 모처럼 부담 없이 술술 읽은 책이었다. 좋은 글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렇게 쉬운 글을 써서 독자가 책 한 권을 편안한 맘으로 끝까지 읽게 하는 것도 작가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이가 들며 그만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SNS에 행복한 단면만 포장하여 올리는 일이다. 명품 선물을 받은 사진, 호텔에 놀러 간 사진 같은 것들을 올리면서 “뽐내기” 와 “보여주기”만 지향하던 가식적인 공간에서, 이제는 내 삶의 한 조각의 향기와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생각을 바꿔 먹은 것이다.
나를 오염시키는 관계를 놓지 못하고 허덕이는 일도 어느새 그만두게 된 것 같다. 칭찬과 존중의 말보다는 비아냥과 핀잔의 대화가 더 많았던 인연과도 기꺼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오랜 지인이었기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끌려다니고 있었는데,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해가 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점심 약속을 잡는 일도 이제는 그만두었다. 대신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혼자 먹는 시간을 비워둔다. 물론 일부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 변화의 근본은 혼자 있는 시간의 여유와 가치를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대한 이야기는 늘 반갑고 새롭다. 언제나 앞으로 힘껏 달리기만을, 위로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꾹 참고 버티기만을 강조해왔던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에 “잠깐만요” 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작년 무렵부터 천천히 속도를 늦추자는 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것도 전혀 우려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쁠 따름이다.
물론 이 처방전이 누군가에게나 늘 옳은 것은 아닐 테다. 3시간씩 점심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일처리를 하는 저기 어느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부지런함과 열정의 단어들을 심어주어야 할지 모른다. 인생의 3분의 1쯤 달려와 뒤돌아보니 언제나 ‘균형’을 잡는 것이 ‘잘 사는’ 비결인 것 같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너무 기울었다 싶으면 조금 비워주고, 너무 비어있을 땐 조금 욕심을 내보기도 하고 말이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은 특별히 대단하거나 해박한 지식이 담긴 책은 아니었지만, 잔잔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한 명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그리고 한 명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은 물론 행복하기도 하지만 고된 순간도 적지 않다. 아이의 교육도, 나의 진로도, 집안일도, 건강도 모두 다 중요한 것들이라 어느 하나도 놓을 수가 없다. 잔뜩 신경 쓸 것들 사이에 행여 감기나 입술의 물집 같은 것까지 겹치면 그동안 붙들고 있던 정신력마저 약해져서 걷잡을 수 없이 비틀거리게 된다. 게다가 서른과 마흔의 경계에는 젊은 날의 열정과 욕심, 어른의 비움과 포기가 맞물리는 시기라 둘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혼돈의 시간은 결코 자연스럽고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기에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벚꽃으로 다들 들떠있는 이 계절이 내게는 조금 고되다 싶을 때쯤, 출퇴근길 지하철을 오며 가며 읽은 이 책은 딱딱하게 뭉친 내 몸과 마음에 한 방울의 아로마 오일이 되어주었다. 힘든 날 술이 아닌, 그렇다고 누군가를 붙들고 떠는 긴긴 수다도 아닌, 짧은 책 한 권에서 값진 위로를 얻었으니 이 정도면 첫인상과 다르게 참 야무진 책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다 알고 있고, 지극히 당연하지만, 너무 쉽게 잊으며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들이 참 많다. 그리고 자꾸 놓으려 해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끌어당기고 있을 때 과연 나만 내려놓아도 되는 걸까 불안하고 망설여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 마음이 통하는 이와 나누는 짧고도 진지한 대화가 복잡한 마음을 싹 가라앉혀 비워 내기도 하는 것처럼, 이 책은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는 내 오랜 친구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서른과 마흔의 중간에서 이 책을 만난 덕분에, 오늘 밤 비울 것은 비워내고 남길 것들만 다시 가슴에 채워본다. 이렇게 마음을 청소했으니, 남은 봄은 홀가분하게, 조금 더 웃으면서 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내일은 19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던데 모처럼 산책을 나가 늦은 봄을 만끽해야겠다. 비록 벚꽃은 떨어지고 없지만, 벚꽃보다 더 예쁜 풍경이 눈에 담기리라 믿는다. 이제 비로소 내 마음도 봄이 되었으니.
사람은 저마다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어요. 누구라도 못하는 것이 있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도 젊을 때는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못 하겠다며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고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서로 마음이 오갈 수 있는 정도의 관계예요. 그렇기에 누군가와 교류하는 폭을 한 치수 줄이는 게 무리가 없지요. 그러려면 때로는 부름에 사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인생은 길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엄선한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이치다노리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