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지속되면 권리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친구들에게 스타벅스의 아이스 자몽 허니 블랙티를 쐈다. 커피를 제외한 음료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 친구들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한 친구는 맛있다고 쪽쪽 빨아먹는데 나머지 두 친구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게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자꾸만 얼음이 녹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놈들아, 지금 안 마시면 얼음이 녹아서 더 싱거워져. 그럼 더 맛이 없어진다고. 원래는 꽤 맛있는 음료인데 말이야.
머릿속이 꽤 복잡해졌다. 두 친구는 단 음료를 싫어하는 것일까, 자몽의 쓴맛이 싫은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닌 섞인 맛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 순간 아주 오래 전 구걸하는 이들에게 적선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얘기가 있지 않은가. 구걸하던 사람이 퇴근 시간이 되면 벤츠를 타고 사라진다거나 갑자기 두 다리가 멀쩡해져서 일어나서 걸어간다는. 또 적선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진정한 자립은 멀어진다는 말이나 구걸을 시켜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도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런 고민을 내어 놓았더니 한 친구가 대답을 했다. 누구야, 호의는 베푸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거야. 네가 할 일은 힘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고 그다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현명한 친구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래. 내가 할 일은 거기까지구나. 다음 일은 내 것이 아니니 내려놓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긍휼:불쌍히 여겨 돌봐줌
이 기억이 떠오른 덕분에 내가 사 준 음료를 잘 마시지 않고 있는 두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도 편해졌다. 나는 나의 몫을 다했고 나머지는 그들의 몫이니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여태 음료를 잘 마시지 않고 있던 그들이 단숨에 쭉쭉 빨아 마시기 시작한 것은. 한 방에 거의 1/3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에 또 마음 낭비를 했구나 싶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결국 남의 몫이 아닌 나의 몫만 제대로 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베푼 친절이나 호의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몫은 그들에게 온전히 맡겨놓고 좋은 마음으로 친절을 베푼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