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Apr 15. 2024

건망증의 원인 1

외출을 나갔다 돌아와서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뒷면에 꽂혀 있어야 할 신용카드가 보이질 않았다. 뭐지 뭐지. 불길한 예감에 신용카드 앱을 열어 최근 결제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쿠팡에서 결제한 내역이 떡하니 떠있는 것 아닌가. 뭐지 뭐지. 난 오늘 쿠팡에서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누군가 내 카드를 주워서 사용한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했는데, 알고 봤더니 점심때 쿠팡이츠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내역이었다. 아. 다행이다 안도하면서도 신용카드의 행방이 궁금했다. 


혹시나 싶어 저녁을 먹은 식당에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그곳에 있었다. 


"저, 혹시 거기서 저녁 먹고 온 사람인데요, 신용카드를 두고 온 것 같아서요."

"네~ 무슨 색깔이시죠? 두고 간 분들이 여럿 있어서요. 주황색, 남색 등등"

"아~ 남색입니다. 서기라고 이름 적혀 있고요."

"아~ 있는 것 같아요."

"네. 지금 찾으러 가겠습니다."


점원과의 대화 덕분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나 같은 이들이 또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카드를 찾으러 가서 점원에게 넌지시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 말고 카드 놓고 간 사람 있잖아요. 혹시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던가요? 제가 제일 젊은 건 아니죠? 


이런 부질없는 비교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식당에 신용카드를 놓고 온 것이 올해만 벌써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도 같은 식당에! 사실 엄밀히 따지면 같은 프랜차이즈의, 다른 지점이긴 하지만. 


머릿속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a 지점 점원: 아니, 거기도 그 손님이 카드를 놓고 갔어?

b 지점 점원: 어! 그런데 영 이상하지 않아?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던데, 카드를 자꾸 잃어버린다는 게.

a 지점 점원: 그러니까 말이야. 알고 보면 본사에서 친절도 같은 것 파악하려고 보내는 스파이 아니야?

b 지점 점원: 아, 난 되게 퉁명스럽게 말했는데 어쩌지? 


점원과의 통화를 통해 또 하나 느낀 점이 있다. 점원의 마지막 말인 "있는 것 같아요." 때문이다. 블로그 이웃분께서 말끝에 '~같아요'를 남발하는 것이 싫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글을 읽고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냥 그런 말투를 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며. 나 역시 글을 쓰며 습관적으로 썼기 때문에 자기방어 기제가 발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실물을 찾는 고객에게,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는 물건에 대해 말을 하면서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눈으로 보고 확인한 물건이니 '네, 여기 있어요'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았으리라. 


그런데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이나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으면 심각한 것 아니냐고?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곰곰이 건망증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같은 프랜차이즈의 두 가게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테이블 위에 태블릿이 설치가 되어 있고 그곳에 카드를 꽂아 결제를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니, 요즘 그런 가게들이 어디 한 둘이냐고? 거기 카드를 꽂아놓고 잊어버리는 것은 온전히 자기 탓 아니냐고? 워워~ 나의 변명을 조금만 더 들어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상등과 성선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