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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Feb 12. 2024

울산은 잘못이 없었다.

내가 나를 잘 몰랐을 뿐.



"마음이 심란하네. 마냥 좋지만은 않네."

"나도 그래...."


설 명절을 보내러 울산에 오기 전날 밤, 남편은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로 이주해 온 지 꽉 채운 10년이 되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둘이서 가게 운영하며 아이 키우며 팍팍하게 살다 보니 1년에 고작 한번 설날에만 가곤 한다. 오랜만에 양쪽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제주에서 사는 것 어때요? 울산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묻는 질문들에 항상 제주가 너무 좋다고 울산은 답답하다고 대답했다. 제주가 좋아서 온 것도 있지만, 울산이 싫어서 도망친 게 더 큰 이유다. 그리고 10년 동안 한결같이 나는 울산에만 오면 여전히 답답했다. 그 답답함의 이유를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울산에서는 제대로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졌다. 제주는 고도제한 때문에도 아직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도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해봐야 3~4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주를 이루어서 어디서나 하늘이 뻥 뚫려서 잘 보인다. 제주로 이주하고 가장 좋은 건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먼저 꺼낸 울산에 오는 답답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울산이 답답하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으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은 울산이 답답하다는 건 핑계 아닐까, 내 마음이 답답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뭐가 그렇게 답답했을까. 굳이 바다 건너 멀고 먼 제주까지 도망쳐야 했을까...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32년 동안 나는 내가 없는 삶을 살았다. 여러 역할들에 끼워 맞춰진 나, 타인에게 보이는 나는 있었지만 정작 진짜 나를 돌보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잘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탈진해 버렸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착한 큰 딸과 며느리라는 타이틀에서 모두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나'이고 싶었고, '엄마'이고 싶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홀로 서고 싶었다. 그게 나에겐 울산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을 감당하지 못한 내가 문제였지 울산은 잘못이 없었다.



자신을 믿으면
남을 설득할 필요가 없고,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자신을 받아들이면
온 세상이 받아들일 것이다.


                               - 《도덕경》 노자 -



어디에서 살아도 내 중심만 잘 잡을 수 있다면 잘 살 수 있겠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울산에 온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웬일인지 답답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그저 반갑고, 좁은 집이지만 가족이 북적대는 느낌이 좋다. 시댁에 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노트북을 들고 근처 카페로 나왔다. 내 역할을 다하면서도 얼마든지 '나'이기를 선택할 수 있다. 예전에도 그럴 수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역할에 맞춰서만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때도 내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어떤 상황이었든 내가 한 행동의 선택은 내가 했다는 것, 그러니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내가 져야 한다. 그러니 앞으론 절대 누구도 어떤 것도 탓하지 말자.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자. 더는 도망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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